29. 예수님의 믿음의 결말

by blog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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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말씀하셔서 나타난 믿음

누가복음 23장 46절,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마지막 장면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일곱 말씀을 하셨다. 그 중에 마지막 말씀이다. 

이 마지막 말씀은 한 마디로 믿음의 말씀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쳐다볼 때에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으로 완성이 된다. 실제로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선언을 하실 때에,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끝이 났다’고 하는 헬라어이다. ‘끝이 나다’ 영어로 ‘It is finished’ ‘끝이 나졌다’ 헬라어로는 ‘테텔로스타이(Τετέλεσται)’ ‘끝을 내다’는 헬라어의 표현이다. 끝이 나졌습니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삶은 정확하게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평생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셔서 아버지 하나님이 자기 안에 사시도록 허락하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서 말씀하시고 역사하시고 일하시도록 그렇게 허락하시고 맡기신 그 믿음이 끝까지, 마지막 숨을 거두실 때까지도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다.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에서 ‘온전케 하다’와 ‘끝이 나다’는 ‘텔로스(τέλος)’ 같은 어근이다. 온전케 하시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한 완전히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셔서 마지막으로 이루신 완전케 하신 사건이 십자가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일곱 말씀을 하신 중에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시면서 하신 말씀이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부탁한다’는 헬라어는 ‘맡긴다’는 뜻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하셨다. ‘부탁하다’는 ‘파라티테미’라는 헬라어인데, ‘티테미(τιʹθημι)’라는 동사는 ‘놓다’ ‘어디에 무얼 놓다’는 뜻이고, ‘파라’는 ‘바로 옆에’라는 뜻으로, 아주 생생한 표현이다. ‘아버지 손에 확실히 놓는다’는 표현이다. 

마지막 육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이 영원 전에 자기를 하나님의 손에, 아버지의 손에 맡기셨던 예수님, 믿음으로 완전히 맡기셨던 그 믿음이 완성되는, 완전히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요한복음 19장 30절에 하나님 아버지와 맺었던 그 평화의 언약, 죄를 갚는 언약을 다 이루었습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선언하고 온 우주 앞에 선언하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개인적으로 마지막 운명 하시면서 내 영혼을, 내 목숨을 아버지 손에 부탁 하나이다! 이것은 예수님의 믿음의 끝이었다. 

죽음과 부활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될 사실은, 예수님이 당하신 이 사망은 영원한 사망이다. 곧 로마서 6장 23절에 말씀하신 “죄의 삯은 사망이요”하신 사망이다. 이것은 부활이 없는 사망을 말한다. 영원히 죽는 것이다. 이 사망은 우리 성경에 둘째 사망이라고 표현한 사망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악인이, 죄인이 마지막 받아야 될 받아야 될 형벌이 둘째 사망이다. 이 둘째 사망은 부활이 없다. 더 이상 부활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로 15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현재 세상에서 우리가 말하는 사망, 음부 곧 무덤들, 그것들조차도 들어가서 영원히 없어져 버리는 것을 둘째사망이라고 표현했다. 이 둘째 사망의 모습은 영원히 불에 타서 재가 되어서, 소멸되어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사망이다. 이 사망은 부활이 없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장 28, 29절,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죽은 자들은 다 부활한다. 다 부활하는 때가 있다. 종류는 두 가지이다. 생명의 부활, 그리고 두 번째는 심판의 부활이다. 더 이상의 부활은 없다. 생명의 부활은 분명히 예수님이 재림 하시는 날 부활한다. 데살로니가 전서 4장 16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생명의 부활이다. 

요한계시록 20장 5, 6절에도 이 부활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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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동안 왕 노릇하는 자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이다. 그리고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두 번째 죽지 않는다. 영원히 사는 것이다. 나머지 둘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이 둘째 사망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악인들의 마지막 운명이고 죄의 삯이라고 말한 사망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사망인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경험하신 둘째 사망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죽음은 바로 둘째 사망이다. 영원히 죽는 것이다. 그 분은 우리와 죄를 안으시고 영원한 사망을 당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게 하셨다. 동시에 그는 본인이, 예수님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의로 말미암아 생명의 부활로 일어나신다. 우리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의를 이루신, 사망을 없애시고 죄를 없애시고 사랑을 완성하신 그 분의 의에 의해서 부활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활시킬 때 당신의 의로 우리를 부활시키시는 것이다. 그것이 로마서 4장 25절에 바울이 했던 같은 말이다.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이제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기억해야 될 사실은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3장 46절,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나는 이렇게 죽어도 좋으니 내 자식들만은 살려달라고 부탁하시고 마지막으로 자기의 영혼을, 목숨을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셨다. 맡기신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예수님은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진 것이다. 둘째 사망에 던져지실 때 자기를 영원히 버리시는 아버지 손에 자기를 죽여주시도록, 자식들 대신 죽여주시고 내 자식들은 살려달라고,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자기를 아버지께 맡기신 믿음이다. 영원한 자기희생의 사랑에 의해서 아버지의 손에 자기 목숨을 완전히 죽여주시도록 맡기신 놀라운 사랑의 믿음이다. 

우리 주님께서 자기 목숨을 아버지 손에 맡기신, 영원히 버리신 그 놀라운 희생의 결과로 우리는 구원을 얻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다”고 한 디모데후서 3장 15절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믿음은 아버지 하나님을 붙들었던 믿음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그 영원한 사랑을 보여주신 불변의 사랑, 죽음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던 그 사랑을 보여주신 그 신실하신 사랑, 그 신실하심, 그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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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누가복음 23장 46절
  • 요한복음 19장 30절
  • 히브리서 12장 2절
  • 요한복음 19장 30절
  • 로마서 6장 23절
  • 요한계시록 20장 13~15절
  • 요한복음 5장 28,29절
  •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
  • 요한복음 20장 5,6절
  • 누가복음 23장 46절
  • 디모데후서 3장 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