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애통하는 자의 복

by blogmaster posted Aug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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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대한 애통

마태복음 5장 4절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설파하신 말씀은 ‘애통하는 자’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로는 도저히 애통을 축복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보통은 행복하고 기쁜 것을 축복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애통(哀痛)’이라는 말은 깊은 슬픔을 뜻하는데 이 깊은 슬픔을 과연 누가 축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애통’에 대해 좀 더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스가랴 12장 10절에 이 ‘애통’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근원적이고 중요한 애통입니다. 십자가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짓밟고 죽였는지 여실히 깨닫게 됩니다. 실제로 우리의 죄가 주님의 가슴을 갈라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애통이 밀려옵니다.

십자가에서 나를 용서하고 가신 그 사랑이 가슴에 느껴지기 시작할 때 진정한 애통이 시작됩니다. 그 애통은 죄로 인한 애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대한 애통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애통하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위로는 분명히 우리를 용서하신 위로입니다. 당신은 돌아가시고 우리는 살리신 그 사랑의 가슴을 경험한 사람이 진정으로 회심하게 될 때 애통이 이르러 옵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가졌던 단순한 깨달음에 머물지 않고 용서와 은혜를 깊이 알아갈 때 애통이 더 깊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처럼 애통과 회개가 깊어지는 과정입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깊은 죄의 본성을 깨닫고 죄를 용서하신 깊은 사랑의 본성으로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작게만 보이던 십자가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흔히 ‘성화(聖化)’라고도 합니다. 성화는 우리가 자신을 성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이 우리를 의롭고 성스럽게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고 알아갈수록 자신의 죄가 얼마나 더 크고 깊은지 알 뿐이지 고상한 언행으로 우리의 신앙을 단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성화된 사람은 사도 바울이 고백한 대로 “내 속에 선한 것이 없다”(로마서 7장 18절)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에 보면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본심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가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고통을 허락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쓸모없는 돌은 절대로 하나님께서 용광로 속에 넣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돌 안에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들어있을 때만 그것을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하고 온전한 금과 다이아몬드를 얻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시는 은혜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의 육체와 환경에 어떤 가시를 주실 때 우리는 은혜를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우리 인생이 괴롭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런데도 어려움과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은 은혜라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역경과 고통을 겪어보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고통을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결국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고난과 죽으심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그 놀라운 사랑을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통하는 마음을 통해 은혜를 배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4절
  • 스가랴 12장 10절
  • 로마서 7장 18절
  •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