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아름다운 꽃 예수님

by blogmaster posted Aug 29,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강의 오디오 듣기(MP3 다운로드)
강의 오디오 듣기(팟캐스트)

사랑의 꽃! 자기 희생의 향기

이번 글에서는 산상수훈 중에서 마태복음 6장 25절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는 의식주, 즉 옷과 밥과 집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들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생존에 커다란 지장이 있습니다. 특히 먹는 음식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매우 직접적이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이 타락할 때도 식욕의 방종으로부터 무너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의 금식을 통하여 이 식욕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돌덩이를 빵으로 바꾸라는 사단의 책략에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태복음 4장 4절)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적인 필요를 예수님께서는 절대로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도 음식을 금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후일에 거짓말을 하는 자가 나타날 것인데 그가 혼인과 어떤 음식을 폐하라고 가르칠 것을 예언했습니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디모데전서 4장 3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복음 6장 26절) 예수님께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는 것에 관한 한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밥상을 차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공중의 새”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봇대에 앉아있는 새가 아니라 공중의 새를 언급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마태복음 6장 26절의 “공중의 새”는 아마도 부지런히 음식을 찾아다니는 새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루 동안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의식주의 축복을 감사히 받을 것입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노동의 명령은 죄를 지은 인간에게 저주가 아니라 도리어 축복입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세기 3장 19절)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에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한다고 되어있지만, 히브리어로는 얼굴 대신에 ‘코’를 의미하는 ‘아프(אַף)’가 쓰였습니다. 콧잔등에 땀이 맺혀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아프라는 단어는 창세기 2장 7절“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었다고 할 때의 그 코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간 그 코에 구슬땀이 흘러야 비로소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범죄 한 후에는 노동이 창조에 이어지는 매우 중요한 행위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냥 보통 노동이 아니라 땀이 흐르는 노동을 말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할 때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보장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전봇대에 그냥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안 하고 앉아 있는 새는 하늘로부터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듯이 무위도식하며 하루를 허비하는 게으른 사람 역시 아무런 의식주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저 놀고먹고 편안하게 사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저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천지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꽃 속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꽃! 자기 희생의 향기를 발하는,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사랑의 꽃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단순히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구주로만 생각하지만, 십자가를 자세히 묵상할 때

그분의 죽으심의 뒤에는 그 무한한 사랑의 힘이 향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분 안에 있는 그 사랑이라는 꽃, 그 꽃을 우리도 가슴에 간직할 때 우리의 품성 역시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의 아름다움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은 백합화를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 한없는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눈에 솔로몬의 옷보다 더 아름다운 꽃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6장 25절
  • 마태복음 4장 4절
  • 디모데전서 4장 3절
  • 마태복음 6장 26절
  • 마태복음 6장 26절
  • 창세기 3장 19절
  • 창세기 2장 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