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이 존경스럽고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
다시 한 번 마태복음 6장 9절에 등장하는 주기도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여기에서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여’라고 예수님이 부르신 온 우주의 주인이신 ‘아버지’라는 말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랑의 보증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철부지 남녀라도 부모가 되면 자기 자식이 싼 똥오줌을 기꺼이 다 받아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9절) 시편115편 3절에 보면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거룩하다’라는 단어 자체가 히브리어로 ‘카다쉬’라는 동사로 ‘구별하여 바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존경스럽고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사야 6장 3절을 보면 스랍들, 즉 불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얼굴을 가리고 발을 가리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삼창을 하는 것도 이 이유에서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첫째로 ‘구별’입니다. 창조주로서의 거룩, 즉 이 우주의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만들지 않으신 것이 없고, 오직 그분만이 창조주로서 구별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거룩은 도덕적 ‘완전’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마음을 씻고 또 씻는다 해도 완전히 깨끗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완전이란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수양이나 덕을 쌓아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분은 오직 근원부터 우리와 구별되시고 본성부터 죄가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밖에 안 계십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거룩은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자신을 다 주시는 거룩을 말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시면서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요한복음 17장 19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을 제물로 구별하여 바치시는 것이 그분의 거룩입니다. 100% 진심으로 주기도문의 기도를 할 수 있는 존재는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를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지상의 어느 누가 감히 이런 기도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죄인 된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라고 기도는 외우지만
그와는 반대로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시면서도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철저한 자기 부정과 이타심입니다. 성전 마당에 서서 도살되는 양의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주님께서 하신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한복음 12장 27〜28절)라는 기도가 이런 예수님의 이타심의 극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직접 하나님 앞에서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숨어서 그 기도를 따라 할 뿐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행복과 구원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자신밖에 모르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영원히 버리신, 자신을 영원한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치신,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하신 예수님 외에 그 누가 감히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저 예수님을 따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를 읊조릴 뿐입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6장 9절
- 시편115편 3절
- 이사야 6장 3절
- 요한복음 17장 19절
- 요한복음 12장 27〜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