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이제 산상수훈의 마지막 장인 마태복음 7장을 보겠습니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여기 ‘비판’이라는 단어가 헬라어로는 ‘심판’이라는 의미의 ‘크리노(κρίνω)’인데 크리노는 히브리어 ‘샤파트(שָׁפַט)’라는 동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맥락에서 ‘비판’은 오늘날의 용례와는 다르게 상당히 무거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크리노라는 말에는 쭉정이와 알곡을 ‘걸러낸다’, ‘가려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 양과 염소를 가려내는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짓밟는 것은 사단의 정신이며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도덕적인 잣대나 상대적인 기준으로 주위 형제를 비난하거나 정죄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린도전서 4장 5절) 사도 야고보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그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비판하느냐?”((야고보서 4장 11~12절)
마태복음 7장 3절을 보면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말씀이 나옵니다. ‘티’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본래 작은 가지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반면 ‘들보’는 아주 큰 나무 둥치를 말합니다. 여기서 들보는 무엇일까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남을 비판하는 정신을 말합니다. 내 안에서 비판하는 정신을 제거하지 않으면 형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볼 수도, 불쌍히 여길 수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비판하는 정신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들보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칭찬을 한 마디도 듣지 못한 교회가 있는데 바로 3장 14절 이후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지구 역사에 있는 마지막, 말세의 교회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로 언급된 라오디게아 교회가 시대적으로 말세의 교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절)고 권면하셨던 교회가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세상에 눈이 멀고 상대의 결점에만 관심이 가는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20절)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예수님을 보라고 하십니다. 상대를 심판하고 비판하는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려 새로운 신앙의 전기를 마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고린도전서 4장 5절
- 야고보서 4장 11절~12절
- 마태복음 7장 3절
- 요한계시록 3장 14절
- 요한계시록 3장 18절
- 요한계시록 3장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