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새의 번제

by blogmaster posted Sep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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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는 왜 비둘기 모양으로 오셨을까요?

레위기 1장 14절부터 보면 새[鳥]로 드리는 번제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의 제사제도를 익히 알고 있다 할지라도 새를 번제로 드리는 제사에 대해서는 생소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새의 번제는 얼핏 보면 일반 짐승으로 드리는 번제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드릴 것이요.”

산비둘기는 돈을 주고 사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 들판에 그물을 쳐서 잡는 야생 비둘기를 말했습니다. 물론 잡아다가 집에서 기르면 집비둘기가 되겠지만, 일반적으로 당시 유대인들은 따로 돈을 들이지 않고 그물을 쳐서 비둘기를 잡았습니다. 산비둘기로 제사를 드리는 이들은 보통 양이나 송아지를 제물로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비둘기는 따로 사료를 주고 키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값이 쌌습니다. 그래서 새의 번제를 ‘무소유자의 제사’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문둥병 환자들을 정결케 하는 예식에도 산비둘기가 등장합니다.

흔히 이 비둘기를 홍수 때 노아가 물이 얼마나 말랐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보낸 새로 ‘평화의 상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번제로 드리는 새를 두고 평화 운운하는 것은 무엇인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차라리 여기서 비둘기는 희생의 상징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세례(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했다는 점입니다(마태복음 3장 16〜17절). 이때 성령께서는 왜 비둘기 모양으로 오셨을까요? 아마도 비둘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기에 적절해서 비둘기 모양으로 오신 것 같습니다. 무소유자로서 이 세상에 오신 분,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가난의 대명사이신 예수님과 부합하는 상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다시 빈손으로 가는 세상이지만 어떤 이들은 무소유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몇 백만 원짜리 수의를 걸치고 몇 천만 원짜리 관에 들어가서 평당 몇 백만 원을 호가하는 장지에 묻히기도 합니다. 그런 반면에 『무소유』라는 책을 쓴 법정스님은 생전에 입었던 겉옷 하나와 신발 한 켤레만 세상에 남기고 가셨습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것은 그가 평소 하던 이야기 그대로 자발적 궁핍을 실천하며 생활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그 무소유를 넘어서 아예 극빈의 삶을 실천하며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에 누울 자리가 없어 헛간의 말구유를 빌리셔야 했었고 돌아가실 때에도 시신 하나 누일 한 평의 땅이 없어 남의 빈 무덤에서 신세를 지셔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써야 할 가시관과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도리어 그분이 대신 가지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육신과 머리를 짓눌렀던 십자가와 가시관, 그의 손과 발을 찔렀던 쇠못, 이 세 가지만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가지신 전 재산이었습니다. 자신의 것도 아닌 우리의 것이었지만 자신의 것으로 삼아 돌아가셨습니다.

레위기 1장 15〜17절을 보면 제물로 드려진 새는 칼로 자르지 않고 목과 날개를 비틀어 꺾었습니다.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으로 가져다가 그것의 머리를 비틀어 끊고 제단 위에서 불사르고 피는 제단 곁에 흘릴 것이며 그것의 모이주머니와 그 더러운 것은 제거하여 제단 동쪽 재 버리는 곳에 던지고 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여기서 ‘그 더러운 것’은 본래 히브리어로 ‘깃털(plumage)’이란 의미의 단어 ‘노차(נוֹצָה)’를 썼습니다. 멱통과 식도를 끊었고, 날개를 손으로 뽑았으며, 날개를 비틀어 뜯었습니다. 이렇게 죽임을 당한 새의 모습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를 죽이는 방식을 왜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하셨을까요?

모든 것이 십자가 사건에 대한 표상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날갯죽지를 찢는데 다 찢지 않고 조금만 찢는 것은 창에 찔려서 옆구리가 터진 예수님의 벌거벗은 육체를 상징하며, 새의 머리를 잡아 비틀어 목을 꺾는 것은 머리를 숙이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표상합니다(요한복음 19장 30절).

비둘기 같은 성령이 주님께서 자기를 제물로 바치셨던 그 세례(침례)식 때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죽으러 오신 자신의 아들을 보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태복음 3장 1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번제로 드려진 새처럼 아들을 받으시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큰 위로와 영적인 힘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레위기 1장 14절
  • 마태복음 3장 16〜17절
  • 레위기 1장 15〜17절
  • 요한복음 19장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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