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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씨앗인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
이번 글에서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는 구원의 공식이 들어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먼저 은혜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선물입니다.
그 은혜를 죄인이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은혜에 자신을 맡겼을 때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공식입니다.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 하는 이들이 있고 또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느 한쪽만 강조하다 보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이 두 가지 요소가 함께 구원을 이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앞부분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라면 구원의 뒷부분인 믿음은 인간이 해야 할 부분입니다. 물론 믿음 자체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요, 선물이지만 본인이 선택하고 동의하지 않는 이상 이 은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은혜는 사람이 그 하나님의 은혜에 자신을 다 맡기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이라는 물건이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이 구원의 원칙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주 중요한 공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크게 두 가지로 구원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현세적인 구원이며 그 대표적인 것이 병으로부터의 구원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똑같이 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지만, 의미는 달랐습니다. 성경에는 첫 번째 구원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대표적인 예가 마태복음 9장 19〜22절에 나오는 혈루증 여인입니다. 22절에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혈이 멈추지 않던 그 여인이 현세적 필요에 의해서 예수님을 의지함으로 병으로부터 구원을 얻었습니다.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의 1차적인 바람은 육신의 질병이나 현세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바람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병이 나아서 몇 십 년을 더 산다 해도 결국 죽기 마련입니다. 혹여 나사로처럼 죽은 사람이 다시 부활하여 몇 년을 더 살게 되어도 유한한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영원히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두 번째 구원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신약성경에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 첫 번째 기록은 누가복음 7장에 나옵니다. 많은 학자들이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주장하는 한 창녀 마리아를 예수님께서 용서하신 후 누가복음 7장 50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7장 50절 본문에서 말한 ‘네 믿음’은 과연 무슨 믿음일까요? 누가복음 7장 37절 이하에 이 창녀 마리아였다고 생각되는 여인이 예수님 발 앞에 와서 얼굴을 묻고 자기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한없이 울며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그 용서의 사랑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소중해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내려서 예수님의 발을 닦고 그 위에다 예수님이 돌아가시면 부어 드리려고 했던 향유를 붓습니다.
이 여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구원은 병으로부터 받은 구원이 아닙니다. 죄로부터 받은 구원입니다. 분명히 47절에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셨던 구원은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그리고 그 죽음의 씨앗인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마리아 말고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그것은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세리장 삭개오에 관한 기록입니다. 누가복음 19장 9절에도 똑같이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선언하십니다. 분명히 예수님께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구원 역시 질병이나 가난이 아닌 죄로부터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삭개오는 본래 돈을 사랑하는 죄에 빠져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세금징수라는 명목으로 갖은 수법을 동원해 돈을 강탈해서 부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속의 돈을 사랑하는 죄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삭개오의 집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삭개오가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속에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마음속에 있던 욕심이라는 죄를 밖으로 다 밀어내 주셨습니다. 비로소 삭개오는 재물욕이라는 죄에서 해방되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눠주고 억지로 사람들에게서 빼앗은 돈을 네 배씩 갚아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후대책을 세우려고 돈을 일부 남겨두거나 숨겨두지 않았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그동안 자기 스스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었던 죄악의 사슬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삭개오의 마음속에 들어가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삭개오는 예수님 안에서 ‘용서라는 보물’을 찾았습니다. 돈과 바꿀 수 없는 영원한 보물을 찾은 것입니다. 자기를 친구로 대접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그는 완전한 믿음으로 자신을 내맡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욕심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되고 죄악에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말씀대로 오늘도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 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문 밖에서 구원의 초청을 하고 계십니다. “네가 문을 열어 주면 내가 들어가서 너도 어찌할 수 없는 죄를 다 밀어내줄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초청에 시큰둥해 합니다. 내가 구원을 이미 얻었다고, 스스로 죄를 몰아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코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를 용서하신 예수님께 우리의 죄를 맡겨 진정한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에베소서 2장 8절
- 마태복음 9장 19〜22절
- 누가복음 7장 50절
- 누가복음 7장 37절
- 누가복음 7장 47절
- 누가복음 19장 9절
- 요한계시록 3장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