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익은 곡식은 번제단 위에 올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 계속 소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제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금하신 두 가지가 누룩과 꿀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레위기 2장 11절) 지난번 글에 누룩은 죄를 상징하고, 소제물에 누룩을 넣지 않는 것은 주님께서 죄가 없으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꿀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셨고, 세례(침례) 요한이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하니, 막연하게 성경에서 꿀은 좋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꿀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소제와 관련해서 꿀은 세상의 모든 쾌락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소제물에 꿀을 섞지 않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쾌락을 다 포기하셨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소제의 원칙은 이것 말고도 또 있습니다. “처음 익은 것으로는 그것을 여호와께 드릴지나 향기로운 냄새를 위하여는 제단에 올리지 말지며.”(레위기 2장 12절) 여기에서 ‘처음 익은 것’이라는 단어는 처음 수확한 곡식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처음’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머리’를 가리키는 ‘로시(רֹאשׁ)’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바로 이 로시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 ‘레쉬트(רֵאשִׁית)’가 12절에 쓰인 ‘처음 익은 것’입니다. 레쉬트는 ‘시작(beginning)’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에 등장하는 “태초에”가 바로 ‘베레쉬트(בְּרֵאשִׁ֖ית)’입니다. 어쨌든 소제를 드릴 때 레쉬트, 즉 처음 익은 곡식은 번제단 위에 올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유대인의 절기 중에 초실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초실절(初實節)’은 ‘처음 초’ 자에 ‘열매 실’ 자를 붙인 말인데 유대력으로 1월 16일에 이 행사가 치러졌습니다. 다른 말로 ‘흔들 요’ 자를 써서 ‘요제절(搖祭節)’이라고도 합니다. 첫 열매(그 해 처음 수확한 보리 이삭 한단)를 하나님 앞에서 앞뒤로 흔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처음 수확한 보리 이삭 한 단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번제단 위에서 불사르지 않는 것입니다. 번제단은 십자가를 싱징하고, 불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유월절인 1월 14일 오후 3시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 양이 되어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다음 날인 1월 15일은 무교절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1월 16일이 요제절입니다. 이날 아침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정 20절)라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이 요제절을 염두에 두고 부활과 첫 열매를 연결시킨 것이 명백합니다.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23절) 번제단은 분명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한 첫 열매(보릿단)를 결코 번제단 위에 올려 불사르지 않았던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 위에 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레위기 2장 14절을 보면 레쉬트와 아주 상대되는 단어가 나옵니다.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네 소제를 삼되.” 여기서 ‘첫 이삭’이라는 단어는 ‘빅쿠르(בִּכּוּר)’입니다. 이 단어 역시 ‘첫 열매’라는 뜻인데 왜 이렇게 서로 다른 단어를 써서 구분하려 했을까요? 순서 상 12절의 레쉬트는 요제절의 열매를, 14절의 빅쿠르는 오순절의 열매를 상징합니다. 오순절은 1월 16일로부터 49일이 지나 정확하게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요제절에 보릿단을 드렸다면 오순절에는 밀단을 드렸습니다. 이 밀은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레위기 2장 16절의 말씀을 따라가 보면 “제사장은 찧은 곡식 얼마와 기름의 얼마와 모든 유향을 기념물로 불사를찌니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이 제사도 역시 하나님께 불로 바치는 속죄의 성격을 가진 제사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빅쿠르는 예수님의 사도들이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할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곡식을 불에 먼저 볶은 다음 절구에 넣고 공이로 빻아서 가루를 내어 불살랐습니다. 먼저 불로 볶는 것은 오순절에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불같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불로 볶아진 그 곡식을 빻는 것은 성령을 받은 자들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면서 순교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소제에도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고난이 나타나 있습니다.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무교병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마태복음 26장 26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먹은 제자들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수님처럼 자신들의 몸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우리 자신도 이와 같은 소제로 하나님께 드려지기를 소망합니다.
성경구절
- 레위기 2장 11절
- 레위기 2장 12절
- 고린도전서 15정 20절
- 고린도전서 15정 23절
- 레위기 2장 14절
- 레위기 2장 16절
- 마태복음 26장 2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