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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이제 마지막으로 에스겔의 네 번째 약속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스겔 36장 27절의 말씀입니다. “내 신(성령)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여기에 성령이 등장합니다. 새 영과 새 마음, 그리고 동시에 성령이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우리말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라고 되어있지만 원래 원문에는 ‘성령’이 아니고 그냥 ‘영’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과 영’으로 다시 난다는 것은 에스겔 36장의 전체적인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매듭이 됩니다.
에스겔 36장의 마지막 결론은 “너희가 ...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언약이 완결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결혼식에서는 주례사가 마치면 모든 회중이 보는 앞에서 신랑과 신부가 서로 입맞춤을 합니다. 이것은 ‘이제부터 이 사람은 내 사람이고 나는 이 사람 것이다’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이때 신랑과 신부의 입맞춤은 단순한 행위를 넘어 두 사람의 관계를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알리는 선언문(manifesto)과도 같습니다. 또한 신랑이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줍니다. 결혼반지를 끼고 있으면 ‘나는 결혼한 사람이다. 임자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표시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이 말씀은 결혼식에서 주례자가 신혼부부의 성혼선언을 하듯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이 완전히 맺어졌다는 언약의 종결선언입니다.
언약이 완전히 맺어지는 것은 새 영 속에 성령이 들어오실 때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감격스럽고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성령은 새 영 속에 들어오시는 것이지 더러운 영 속에는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들어오시는 자리가 바로 ‘새 영’입니다. 이 새 영은, 나중에 보겠지만, 하나님의 성령이 들어오시는 성령의 전(殿)입니다. 즉 성소(聖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새 영을 창조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성령이 그 속에 들어오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아름다운 동화가 “그래서 두 사람은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것처럼 하나님과 사람이 영원히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언약의 목적이며 귀결입니다.
이를 성경은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태복음 1장 23절)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해서 우리를 물로 정결케 하시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 영을 창조하셔서 우리 속에 넣으시고 그 속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가 완전히 하나가 됩니다. 성령께서 새 영 속에 들어가셔서 우리와 하나가 되는 이 관계를 성경은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로 언약을 ‘브리트(ברית)’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브리트는 ‘한 덩어리’라는 뜻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6장 24절에 분명히 이방의 노예로 출발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등에 업혀서 고향땅으로 돌아와 깨끗한 물로 목욕하고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은 다음 성령이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노예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이 역사가 바로 에스겔의 새 언약입니다. 흔히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주인공의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이것이 곧 율법의 전부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 8장 4절)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우리말로는 ‘요구’라고 되어 있으나 원래는 ‘의’라고 되어 있습니다. “율법의 의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거듭남의 공식,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공식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신 말씀 가운데 정말로 충격적인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2장 43〜44절에서 이런 비유를 하셨습니다. 어떤 악한 귀신이 내쫓겼는데 이 악한 귀신이 자기가 옛날에 살던 집이 어떤가 하고 와서 보니까, 첫째로 소제되고, 두 번째 수리되었는데, 문제는 주인이 없는 빈집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와 살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소제’되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로 깨끗이 청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새롭게 씻고 새 영과 새 마음을 받았는데, 문제는 그 집 안에 주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주인이 누구일까요? 성령님이십니다. 깨끗한 집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용서받고 새 영과 새 마음을 받았지만 그 속에 성령을 모셔 들이지 않은 상태로 두면 빈집이 되고 맙니다. 성령이 살지 않는 빈집은 마귀가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끝까지 주님께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맡겨서 거듭남의 상태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주님처럼 변화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에스겔 36장 27절
- 요한복음 3장 5절
- 마태복음 1장 23절
- 에스겔 36장 24절
- 마태복음 22장 37〜40절
- 로마서 8장 4절
- 마태복음 12장 43〜4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