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간 성소의 회복

by blog posted Jan 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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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전

인간이 하나님의 성령의 전이다. 왜 이런 표현이 성경에 있는가? 우리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자기가 알아서 자기 인생을 잘 살면 하나님께 내가 이렇게 잘 살았으니까 하나님, 저를 좀 어여삐 여겨주십시오.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잘한다. 특별히 이것은 마귀가 오랫동안 우리를 교육시켜온 교육의 결과이다. 

여러분, 부모가 자식 없이는 못산다. 자식 역시 부모 없이 못산다. 어차피 인간관계는 시작부터 사랑의 관계이다. 엄마가 자기 아이에게 피도 주고, 물도 주고, 뼈도 주고, 밥도 주고, 숨도 준 원래 하나였다. 뱃속에서 붙어있었다. 그래서 시작부터 하나이다. 그런데 그 부모와 자식의 사이를 분리시켜 놓는 것은 정말 악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처음 창조하실 때에 비록 엄마의 배 속에서처럼 태에서 만드신 것은 아니지만 자기의 흙으로 자기의 숨을 불어넣으셔서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 그래서 온통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어서 아담이 하나님의 숨으로 산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산다. 그런 인간을 사단이 아버지와 분리시켜 버린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21절에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돌아가신 이유를 설명하시면서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창조는 그렇게 되어 진 것이다. 남편이 아내 속으로 들어가고 아내가 남편 속으로 들어왔을 때 자식이 생긴 것이다. 분명히 남편과 아내가 하나 되지 않는 이상 절대로 자식은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처음 창조하실 때 자기의 흙으로 자기의 숨을 불어넣으셔서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 온통 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숨을 불어넣어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산다. 그런 인간을 사단이 아버지와 분리시켜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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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실 때에 창세기 1장 26절 그것은 분명히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하나님에게, 아들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과 서로에게 자기를 주어서 하나가 되었을 때에 아담이라는 한 열매가 생겼다. 쌍둥이가 세쌍둥이, 네쌍둥이도 나오지만 만약 세쌍둥이이면 그 세 아이 모두에게 엄마도 들어있고 아빠도 들어있다. 삼분의 일씩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생명마다 그 아이들 속에 엄마와 아빠의 유전자가 완전히 혼합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그렇게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하나된 것처럼 우리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인데, 아담이 아버지 밖으로 뛰쳐나가서 그 다음에 다 따로따로 놀고 있다. 이것이 죄이다. 나, 나, 나, 나로 존재한다.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아담과 하와가 사랑을 해서 아들을 낳고 딸을 낳고, 또 아들이 딸하고 결혼해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이것이 모두 우리 한 덩어리였다. 그런데 다 조각조각 나뉘었다. 너는 너, 나는 나 이것이 죄가 가져온 결과이다. 자기 사랑이라는 죄이다. 이 이기심의 사랑이 우리를 다 따로따로 분리시켜 놓은 것이다. 

하나님의 법칙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은 우리를 가로막은 이 자기 사랑의 죄를 다 없애시고 사랑으로 하나가 되게 하셔서 다시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가슴에 안기도록 한 것이었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유와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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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님이 성령님과, 성령님이 예수님과 하나 되신 것은 자기를 주시는 사랑의 행위 때문이었다. 이것이 그분들의 삶의 법칙이다. 하나님 세 분이 살아가시는 법칙이다. 따로따로 사시지 않는다. 서로에게 자기를 주시면서 그렇게 사신다. 그것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 속에 있는 법이다. 자기를 다 주시는 사랑, 그것이 법이다. 그 법을 따라서 그 형상을 따라서 아담을 창조하셨다.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것을 가르치려고 아담 한 사람을 만드셨는데, 세 분이 아담 안에서 한 덩어리가 되었다는 증거물로 그렇게 하셨다. 이 사랑을 가르치려고 갈빗대 하나를 빼어 아담과 똑같은 존재인 하와를 만들어 주시고 그들이 사랑으로 서로에게 자기를 주어서 하나 되게 하신다. 그 사랑을 실천하므로 생긴 열매가 자식이다. 다시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신다. 그러면 또 다른 아들이 나오고 또 다른 딸이 나온다. 다시 이 아이들이 서로에게 자기를 주어서 하나가 된다. 그러면 또 다시 자식이 나온다. 

인류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하나님의 법이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그렇게 사신다. 그래서 창조라는 것이 이루어진다. 하나님 세 분이 서로에게 자기를 다 주는 사랑에 의해서 한 덩어리가 된 모습이 아담이고 그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종자로, 유전자로 그렇게 살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자기를 다 주지 않는 그런 사랑으로 변질될 때 사랑은 죄가 되었다. 죄는 자기를 다 주지 않는 것이다. 

자기를 다 주지 않는 그런 사랑으로 변질될 때 사랑은 죄가 되었다. 죄는 자기를 다 주지 않는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이유가 그것이다. 성령에 충만한, 사랑으로 충만한 그 초대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 것을 다 내어다가 하나님 앞에 내어놓았다. 가난한 자들이 다 함께 나누고 사랑하고 살았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다. 소위 사랑의 공동체이다.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는 사랑의 공동체에서 탈퇴하기를 바랐다. 자기들대로 노후대책 해서 잘 먹고 잘 살려고 그렇게 했던 것이다. 땅 값이 좀 많았던 것 같다. 10억만 바치고 나머지는 나중에 자기들끼리 따로 살려고 놔두었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것은 그 당시에 성령에 충만했던 하나님의 사랑의 완전한 공동체 안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같이, 우리가 서로에게 자신을 다 주어서 하나된 것처럼 저희도 사랑으로 하나 되어서 다시 옛날처럼 우리 안에 있게 해달라고 그것을 위해서 내가 십자가에 죽으러 왔노라고 말씀하신다. 그 십자가의 목적은 분명하다.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하나 됨이라는 말은 사랑으로 하나 됨이다. 자기를 다 주는 사랑이다. 

요즘에 이런 교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목사님도, 장로님도, 집사님도, 평신도들도 다 사랑과 구제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우리가 다 내놓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면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사랑의 하나 됨은 무엇인가? 마음의 법이 하나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있는 그 법이 사랑의 법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목적은 분명하다.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하나 됨이라는 말은 사랑으로 하나 됨이다. 자기를 다 주는 사랑이다.

마음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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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우리의 유전자가 변질되고 바뀌었다는 것이다. 자기 사랑과 이기심의 유전자로 바뀌었다. 유전자 법칙이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주는 것이 없어졌고 내 것을 챙기는 것을 시작했다. 결론은 마음이 같지 않아서 하나님과 우리가 분리된 것이다. 다시 우리가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려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마음의 법이 같아져야 된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의 법이 다시 기록될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본성이 하나님의 본성,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창조될 때에  이 사랑의 법이 마음에 기록되어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이신 우리 아버지를 모셔 들일 수 있는 성소가 되는 것이다. 

결론은 마음이 같지 않아서 하나님과 우리가 분리된 것이다. 다시 우리가 하나님 속으로 들어가려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마음의 법이 같아져야 된다.

흔히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집합을 합집합이라고 한다.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에 사람들이 흔히 이런 식으로 부분집합으로 설명한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공통되는 부분이 이 부분이다. 나머지는 따로따로이다. 이 설명은 아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처럼 합집합이다. 완전한 합집합이다. 

우리가 다시 우리 아버지와 완전히 이렇게 하나가 되려면 반드시 마음의 법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 아버지가 다 주시는 사랑의 법을 가지고 계시는데,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시는 사랑의 법을 가지고 계시는데 나는 내 아들을 아끼면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없다. 성소가 될 수 없다. 로마서 8장 32절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아들까지 주셨던 그 사랑, 그 조건 없는 사랑, 다 주는 사랑의 법이 우리 안에 기록될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로 회복될 수 있다. 

그것을 위해서 주님께서 요한복음 17장 21절에 십자가에 오르셨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요 17:21)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십자가로 보내신 그 뜻을 세상이 믿고 알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시다. 이 기도가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모시는 성소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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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 요한복음 17장 21절
  • 창세기 1장 26절
  • 로마서 8장 32절
  • 요한복음 17장 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