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가인과 아벨의 제사 차이점

by blog posted Jan 04,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s10-1.jpg

가인과 아벨의 제단 이야기

창세기 4장 4, 5절 말씀을 보면,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나온 다음에 처음으로 제사를 드린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창세기 4장 4절 말씀을 보면 “아벨은 자기도 양의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5절,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여기 ‘가인’과 ‘아벨’의 제단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인간이 제사를 드린 첫 번째 기록이다. 물론 아담 자신이 제사를 드렸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록상에는 가인과 아벨의 제단이 처음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왜 이 두 사람의 제단이 소개 되었을까?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인의 제단과 아벨의 제단, 이 두 제단은 각 시대를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렸던 모든 ‘제사’, 모든 ‘예배’에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종류의 명백히 다른 제사와 예배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제단(예배)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성경은 기록하기를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하고 있다. 앞에 나타난 창세기 4장 2절과 3절 말씀에 가인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고 아벨은 양치는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농사짓는 사람의 소산이라면 아마도 곡식이나 과일 종류였을 것이라고 본다. 아벨은 양치는 사람이었고 그는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똑같이 제사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제사가 되지 않은 것이다. 가인과 아벨의 제단의 가장 분명한 차이점이 바로 그것이다. 나중에 오랜 세월 후에 히브리서 11장에 가인과 아벨의 제사의 차이점을 다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11장 4절,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여기에 보면 아벨은 믿음으로 드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벨이 드렸던 믿음의 제사는 무엇일까? ‘믿음’이라는 단어 자체가 ‘맡긴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일에 자신을 맡긴, 그래서 결국은 맡기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제사 드리라는 말씀을 순종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가인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않았다. 자기가 스스로 제사를 드렸다. 다시 말하면 맡기지 않았다. 믿지 않았다. 불신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말씀대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다. 결국은 불순종의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께서 ‘양’을 드리라고 하셨는데 순종하지 않은 것이다.

s10-2.jpg

히브리서 11장 4절에는 “아벨은 의로운 자라는 칭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의로운 자라 칭함’은 분명히 성경에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맡겨서 용서받은 자로서의 의로운 자이다. 자신의 죄를 맡기는 소위 성소의 제사제도에서 아주 중요한 ‘안수’라고 하는 행동이 일어난다. 이것은 자기 죄를 맡기는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아벨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자신의 죄를 맡기라 할 때, 그 양 위에 자기 죄를 안수하여, 곧 양에게 자기 죄를 전가 시킨 것이다. 죄를 다 옮긴 것이다. 

가인은 분명히 불의한 자라는 칭함을 받았다는 것을 본다. 이것은 너무나도 분명하게 그가 자신의 죄를 양에게 옮기라는, 안수하라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자신의 죄를 옮기지 않은 것이다. 옮길 대상이 없으니까 물론 옮기지 못했다.

죄를 맡기는 소위 성소의 제사제도에서 아주 중요한 ‘안수’라고 하는 행동이 일어난다. 이것은 자기 죄를 맡기는 행위이다. 다시 말하면 아벨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자신의 죄를 맡기라 할 때, 그 양 위에 자기 죄를 안수하여, 곧 양에게 자기 죄를 전가 시킨 것이다. 죄를 다 옮긴 것이다.

계속해서 말씀드린다.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나니히브리서 11장 4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여기 ‘하나님의 증거’가 나타난다. 아벨의 제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증거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증거 하심이 무엇인가? 너무나 당연하다. 하나님의 증거 하심은 우리를 의롭다고 증거 하신다. 곧 아벨을 의롭다고 증거 하신다. 앞에 분명히 의로운 자라 증거를 얻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법적인 선언이다. 양이 죽고 아벨은 의로운 자라는 칭함을, 증거를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다(히11:4). 

s10-3.jpg

결론은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단에, 가인을 의롭다고 칭하실 수 없다. 의롭다고 증거 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이 말씀이 말씀하는 것은 비록 아벨은 죽었지만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고 있다.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와 은혜를 말하고 있다. 의로운 자라는 칭함을 얻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창세기 4장 3절과 4, 5절을 보면 결론적으로 성경은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으셨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하셨다고 말한다. 이것이 확연하게 가인과 아벨의 제단의 차이점이다. ‘열납했다’는 말을 히브리어로 보면 ‘샤아’라 하는데 이것은 ‘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보셨다고 표현하고 있다. 가인의 제사는 보시지 않았다. 이 ‘보셨다’는 ‘샤아’라는 이 히브리어를 신약성경을 쓴 헬라어로 번역한 번역, 데오도우션이라는 사람이 번역한 성경을 보면 유대인들의 생각을 볼 수 있는데 ‘불을 내렸다’고 번역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은 아벨이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안수해서 죄를 맡겼다. 그래서 양과 함께 아벨의 죄가 하나님이 불을 내리셔서 태워진바 되어 그가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게 된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았다. 그는 양에게 안수하지 않았다. 죄를 제물에게 전가하지 않았다. 죄를 옮길 대상이 없다. 양이 없다. 그래서 그는 소위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서 그의 죄를 태우실 수 없으셨다. 아주 중요한 차이이다. 

아벨이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안수해서 죄를 맡겼다. 그래서 양과 함께 아벨의 죄가 하나님이 불을 내리셔서 태워진바 되어 그가 의로운 자라 하는 증거를 얻게 된다. 가인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순종하지 않았다. 그는 양에게 안수하지 않았다. 죄를 제물에게 전가하지 않았다. 죄를 옮길 대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소위 하나님께서 불을 내려서 그의 죄를 태우실 수 없으셨다. 아주 중요한 차이이다.

제사의 목적

s10-4.jpg

이제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모든 제사의 목적은 ‘죄’를 제거하는 것이다. 이 ‘죄’를 제거하는 일을 사람은 할 수 없다. 사람이 이 제단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불을 태운다 해도 양과 나무만 태울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위에서 불을 내리실 때에는, 하나님의 불은 ‘죄’를 태우는 것이다. 양과 함께 ‘죄’를 태우는 것이다. 

제사의 목적은 너무나 분명하다. ‘죄’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신다, 열납하셨다,  열납하지 아니 하셨다는 말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과 보시지 않는 것은 영원한 운명의 갈림길이다. 하나님께서는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지 않으려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베드로후서 3장 8, 9절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우리가 다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용서받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갈망하시는 분이다. 문제는 사람이 자신의 ‘죄’를 내어놓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수가 없다. 양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죽임을 당하도록 준비가 되어있다. 죄인이 그 위에 자신의 ‘죄’를 옮기면 양은 죽임을 당하고, 양과 함께 ‘죄’는 불에 태워지고 없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이 제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런데 너무나 가슴 아픈 것은 죄인이 ‘죄’를 내놓지 않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 했지만 이사야 1장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가 막힌 제사와 똑같다. 그들은 하나님께 양의 기름이나 많이 드시라고 부지런히 양을 잡아서 기름을 태운다. 피를 갖다 쏟는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결코 ‘죄’를 내놓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이 손으로는 안수하지만, 입으로는 죄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자기들의 속에 있는 ‘죄’는 내놓지 않았다. 맡기지 않았다. 용서받기를 원치 않았다. ‘죄’가 좋았기 때문이다. ‘죄’와 같이 살고 싶어서, 그래서 성회와 아울러 악을 계속 행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견딜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제사를, 예배를 드리는 일에 있어서 이런 비슷한 유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에 우리가 믿음으로 ‘죄’를 맡김으로, 우리의 ‘죄’가 하나님의 소원대로 사루어지고 우리가 다 용서받은 사람들로 구원 얻게 되기를 하나님은 간절히 원하신다.

너무나 가슴 아픈 것은 죄인이 ‘죄’는 내놓지 않았다. 맡기지 않았다. 용서받기를 원치 않았다. ‘죄’가 좋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견딜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태그:에덴동산,제사,가인,아벨,제물,믿음,순종,죄,용서,안수,전가,열납

성경구절

  • 창세기 4장 2~5절
  • 히브리서 11장 4절
  • 창세기 4장 3~4절
  • 디모데전서 2장 4절
  • 베드로후서 3장 8,9절
  • 이사야 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