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죄 사함의 과정

by blogmaster posted Sep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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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가 자신의 죄를 안수해야만 속죄가 이루어진다

지난 글에 이어 이번 글에서는 번제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레위기 1장 4절에서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여기서 ‘그를 위하여’의 ‘위하여’는 히브리어로 ‘알(עַל)’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위에서(upon)’, ‘위로(over)’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그 사람 위에서(upon him)’ 속죄가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속죄가 ‘덮다’라는 뜻이기에 직역하면 ‘그 위에 덮을 것이다’가 될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번제단에서 받은 피를 가지고 제사장이 성소 안에 들어가서 휘장에 뿌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죗값을 다 갚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개인적으로 예수님께 죄를 내놓을 때 그분의 보혈이 우리의 죄 위에 뿌려짐으로 우리의 죄가 ‘덮어져서’ 죄를 없애게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번제단, 즉 십자가 위에서 모든 죗값이 완전히 다 갚아졌고 해결되었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 9장 12절) 속죄가 완성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를 위한 속죄가 단번에 끝난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죗값을 갚을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0장 18절)

그런데 문제는 우리 죄인 각자가 자신의 죄를 안수해야만 속죄가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나의 죄가 어린양에게 옮겨져야만 그 죄를 하나님께서 덮으실 수 있습니다. 속죄는 교환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죄를 옮기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용서의 피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피가 우리를 덮어서 우리의 죄를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성소에는 정사각형 마당이 두 개가 있는데 첫 번째 마당에서 양을 잡아 그 양의 피를 두 번째 마당에 있는 성소로 옮깁니다. 이 안에 들어가서 피를 뿌림으로 비로소 용서받는 속죄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소에 옮겨진 피를 지우는 속죄가 지성소 안에서 다시 한 번 피가 뿌려짐으로 종결됩니다. 번제단, 곧 첫 번째 마당에서 속죄의 근거가 완성되었지만 그 피는 성소와 지성소로 옮겨져야 합니다.(히 9:11,12) 이 속죄의 과정을 믿는 사람에게 구원이 이르러 옵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2장 8절)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은혜를 믿음으로 개인의 죄가 옮겨지고 죄인 자신이 그 은혜에 자기 죄를 맡기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백 번을 십자가에서 돌아가신다 할지라도 자신의 죄를 그분에게 맡기지 않는 이상 구원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 번제물에 반드시 안수를 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레위기 1장 5절“그는 여호와 앞에서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여호와 앞에서’라는 말은 원문에는 ‘여호와의 얼굴에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파님(פָנִים)’을 썼는데,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이 표현은 단순한 명칭이 아니라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심판을 가리키는 중요한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다’라는 표현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여기서 압살롬의 이야기를 잠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압살롬의 이복형인 암논이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을 데려다가 강간해서 몹쓸 인간으로 만들어 내쫓았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압살롬이 결국 형인 암논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궁정에서 형제간의 비극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압살롬은 줄행랑을 칩니다. 아버지 다윗이 자신을 용서하지 않자 압살롬은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요압의 곡식밭에 불을 지릅니다. 요압이 쫓아와서 “너 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따지자 압살롬은 “당신이 우리 아버지한테 나를 다시 성으로 돌아가게 소개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이에 요압의 보고를 듣고 다윗은 드디어 아들 압살롬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얼굴을 본다’는 말은 ‘그를 용서한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여호와의 얼굴에서’의 ‘얼굴’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는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둘째는 그 용서의 심판에 자기를 맡긴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레위기 1장 4절
  • 히브리서 9장 11절~12절
  • 히브리서 10장 18절
  • 에베소서 2장 8절
  • 레위기 1장 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