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사랑하지 않는 죄

by blogmaster posted Nov 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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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는 것, 그것이 죄인 것

지금까지는 죄에 대한 근원적인 이야기만 다루었는데, 이번 글에서는 죄의 실제적인 모습, 죄가 실제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마태복음 5장 17절) ‘완전케 하신다’는 말씀은 헬라어로 ‘플레로오(πληρόω)’라는 동사이며 ‘가득 채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의와 인과 신’을 버림으로 빈껍데기만 남은 하나님의 율법을 예수님께서 완전하게 채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20절)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우리는 문자적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내고 예배일을 잘 지키고 나쁜 짓을 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합니다. 이를 가장 잘 실천했던 사람들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사람의 의였습니다. 그 사람의 의로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예를 다음과 같이 드셨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21~22절) 십계명 중에서 여섯 번째 계명을 예로 드시면서 문자적으로만 지키는 율법이 아닌 ‘사랑으로 지키는 율법’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십니다.

형제에게 노하고 욕하는 자는 그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살인한 자와 같이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에게 화를 내는 것이 왜 살인죄에 해당할까요? 그 이유는 그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죽이는 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밥만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될 때에도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먹으면서 살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모가 자식을 사랑할 때에도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칩니다. 부모가 사는 이유는 오직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먹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삶이고 인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끊어버리면 죽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살아 있지만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내용이기에 반복하겠습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그 말씀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이것은 나쁘니까 먹지 마라. 야야, 이것은 좋은 거니까 먹어라.” 그러십니다. 우리 엄마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몸에 안 좋은 라면 먹지 말고 밥을 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것, 그것이 죄인 것입니다. 사랑하면 화를 낼 수 없습니다. 사랑하면 그 허물을 다 덮고 자기가 그 잘못을 다 해결합니다.

계속해서 마태복음 5장 22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라가’라는 말은 그 나라말로 ‘라카’라는 말인데 그 뜻은 ‘비었다’는 뜻입니다. 흔히 속된 말로 사용하는, 멍청하다는 뜻으로 욕할 때 사용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라가라 하는 자”와 같은 말입니다. 이런 자들은 심판을 받고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 왜 죄인지, 그것도 왜 살인죄에까지 해당하는지 얼핏 들으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을 멸시하면서 삽니다. 특별히 도덕적으로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어느 나라를 갔더니 너무 더럽더라, 아무데나 침을 뱉고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더라 이러면서 조금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하여 욕을 합니다. 멸시하는 것입니다.

이 멸시하는 살인죄는 정말 무서운 죄입니다. 간접 살인인데 직접 살인보다 더 무서운 죄입니다. 말하자면 왕따 같은 것인데 어떤 한 아이를 두고 많은 아이들이 그 아이가 ‘나쁘다, 나쁘다, 나쁘다’하면서 계속 멸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멸시는 그 아이가 자살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이런 슬픈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에 참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율법을 다시 예로 드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27〜28절)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게 바람을 피면서 나쁜 짓을 하는 그런 이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그러는 우리들은 우리의 마음속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욕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욕보인 것처럼 나의 쾌락과 나의 행복을 위해서 그 사람을 짓밟기도 합니다. 그런데 육체적으로 하는 성폭행만이 죄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정욕과 음란의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짓밟는 것도 똑같은 성폭행이며 죄입니다. 사랑하면 절대로 상대방을 함부로 다루거나 짓밟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꽃을 짓밟아 뭉개버리는 사람이 없듯이 사랑은 상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고 보호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사랑이 없는 것, 사랑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예수님 안에서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17절
  • 마태복음 5장 20~22절
  • 마태복음 5장 27〜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