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해산의 고통을 겪으신 예수님

by blogmaster posted Nov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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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안고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당하셨다

성경은 놀랍게도 예수님을 어머니와 같은 모양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고 십자가로 가시기 바로 전에 하셨던 말씀에서 그 이미지가 드러납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요한복음 16장 21절)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낳으시기 위하여 당하신 고난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제자들도 함께 근심하고 걱정했지만, 예수님께서 느끼신 근심과 고통은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시던 모습, 너무 힘드셔서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이 내게서 옮겨지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하시던 주님의 고난은 결국 우리를 다시 낳아주시기 원하신 어머니의 고난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를 맡기시고 그 죄를 없애시면서 우리를 죄 없는 생명으로 다시 낳으시는 재창조를 하시기 위해서 감당하게 하셨던 고난은 이 세상의 어떤 어머니도 이해할 수 없는 산고였습니다. 영어로 산고를 ‘레이버(labor)’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창세기 3장 16절에 등장하는 고통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죄악이 들어오면서 아담은 땀을 흘리는 ‘노동(labor)’을 통해 땅의 소산을 얻어야 했고, 그의 아내도 해산의 ‘고통(labor)’을 통해 생명을 낳아야 했습니다. 저는 늘 창세기 3장 16절요한복음 3장 16절과 더불어 ‘창세기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뱀의 유혹에 먼저 넘어갔던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해산하는 고통을 더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낳으시는 고통을 경험하게 해 주시는 은혜였습니다. 상징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해산의 고통이 더해질 때 아이를 낳는 그 고통과 더불어서 엄마는 태와 함께 피와 물을 쏟아냅니다. 이 고통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 우리를 다시 낳아주시기 위해 그분이 당하신 고통을 미리 모형으로 보여준 것이며 엄마가 쏟아내는 피와 물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와 물을 쏟게 되실 운명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그분의 심장이 갈라지셨습니다. 얼마 후 로마 군인이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그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쏟아졌습니다(요한복음 19장 34절).

이렇게 예수님의 몸에서 피와 물이 쏟아진 것은, 엄마가 아기를 낳은 다음에 쏟는 피와 물이 아이를 낳았다는 증거물인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새로 낳으셨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내출혈, 속에서 피가 터졌던 것을 분명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피가 속에서 고여 피떡(혈병)과 혈청으로 분리되어 있었고, 그것이 옆구리가 갈라지면서 예수님의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스가랴 13장 6절에도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기록을 보면 “혹이 그에게 묻기를 네 두 팔 사이에 상처는 어찜이냐? 하면 대답하기를 이는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 하리라.” 여기 주님께서 돌아가실 때 그 상처가 ‘두 팔 사이의 상처’라고 되어있는데, 히브리어로는 ‘두 손 사이의 상처(בֵּ֣ין יָדֶ֑יךָ)’로 되어 있습니다. ‘손’을 의미하는 ‘야드’는 창세기 3장 22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에 쓰인 ‘손’과 동일한 단어였습니다. 또한 구약에서 ‘두 팔 사이’라는 표현은 ‘심장’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기어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살이 그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열왕기하 9장 24절) 여기서 ‘두 팔 사이’는 염통(심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망 원인은 우리의 죄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의 결과가 초래한 심장파열인 것입니다.

스가랴 12장 10절에 보면 성령의 임재로 우리의 이기심이 주님의 심장을 갈랐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신다고 말합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가슴에 묻고 돌아가심으로 우리 죄를 해결하셨고, 삼 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 없는 유전자로 다시 거듭나게 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합니다. 물론 이 고독하고 외로운 길을 예수님 홀로 걸아가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리고 떠나려고 할 때,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요한복음 16장 3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그 아들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안고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셨습니다. 그분은 아들과 함께 우리의 죄를 안고 그 모진 산고를 겪으신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버지는 자신의 손으로 아들의 심장을 가르고 우리의 죄를 영원히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아들을 끌어안고 아버지는 함께 산고를 겪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저지른 죄의 대가이며 죄의 진상입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결코 잊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요한복음 16장 21절
  • 창세기 3장 16절
  • 요한복음 3장 16절
  • 요한복음 19장 30절
  • 요한복음 16장 3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