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새 영과 새 마음

by blogmaster posted Nov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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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씻음’ ‘성령의 새롭게 하심’

지난 글에 이어서 이번 글에서는 에스겔 36장 26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4절 서두에서 ‘내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행위를 나타내는 명시적 표시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에서 ‘영’과 ‘마음’이라는 단어는 사실 동의어가 아닙니다. 히브리어로 ‘영’은 ‘숨’을 가리키는 ‘루아흐(רוּחַ)’라는 단어이고 ‘마음’은 ‘심장’을 가리키는 ‘레브’라는 단어입니다. 원어의 의미를 살려서 다시 번역하면, 새 숨이 들어가면 새 심장이 벌떡벌떡 뛴다는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히 새 영과 새 마음은 옛날 영과 옛날 마음이 아닌 새로 창조된 숨과 심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재창조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새와 짐승들, 흐드러진 꽃과 살아있는 대자연을 새롭게 만든다 해도 인간의 더럽고 추한 마음이 그대로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세상이 아무리 아름답게 변했을지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은 지옥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창조에 관한 매우 중요한 약속입니다. 앞서 에스겔 36장 25절에서 보았듯이 죄는 분명히 잿물로 정결케 됩니다. 죄가 불에 태워지고 소멸되어 완전히 재가 되어 죽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처럼 죽음과 소멸의 과정을 겪은 다음 새 영으로 거듭나는 재창조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예수님께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도 구체적으로 새 숨(루아흐=영=숨)과 새 심장(레브=마음=심장)을 가져야 한다는 주문으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영과 마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104편 30절에 보면 똑같은 구조가 나타나는데 히브리어에서 종종 등장하는 특징적인 평행절입니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땅에서 풀과 나무가 올라오듯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것입니다. 새 영은 본성을 가리키며 식물이 나올 수 있는 땅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이 땅에서 식물이 올라오듯 올라오는 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새 숨이 들어갈 때 새 심장이 고동을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에스겔 36장 26절). 그러나 옛날 땅은 제거하시겠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본성, 새 땅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옛날 땅은 여전히 남아 있어 또다시 잡초가 올라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시 태어난 사람들의 마음밭[心田]의 모습입니다. 왜 옛날 땅을 남겨두셨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셔서 성령이 그 안에 들어오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시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윗의 시편에서도 똑같은 구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첫째로 시편 51편 2절“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물로 정결케 씻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로 10절에 다윗은 이렇게 간구하고 있습니다.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영의 창조입니다.

우리가 흔히 거듭나는 것을 약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성경은 거듭거듭 ‘창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하시는 창조입니다. 성경은 명백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새 창조에 의해서 옛날 것은 다 지나가고 결국은 다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마음과 새 영이 창조되었을 때 그 속에 성령이 들어오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유는 당연히 우리들의 죄를 없애고 용서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최종목표는 아닙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의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죄를 정결케 하신 다음에 동시에 우리 안에 원래 우리를 창조하실 때 아담의 마음속에 넣어 주셨던 그 사랑의 마음, 사랑의 본성을 다시 재창조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이라는 단어는 ‘본성’이라고 읽으면 맞습니다. 본성은 바닥, 즉 땅입니다. 땅이 있어야 꽃이 필 수 있습니다. 이 새 영, 새 본성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새 본성을 영어로 하면 ‘뉴 네이쳐(new nature)’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 단어보다는 ‘뉴 진(new gene)’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유전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원래 우리를 창조하실 때 주셨던 그 본래의 유전자(original gene), 원죄(original sin)로 망가지지 않은 그 유전자로 다시금 재창조되는 것이 거듭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새 창조(new creation)라기보다는 재창조(recreation)라는 말을 저는 그래서 좋아합니다. 리모델링이 아니라 신축이며, 개선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디도서 3장 5절에도 똑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분명 ‘중생의 씻음’은 물로 정결케 하는 과정을 말하며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창조를 말합니다. 이 두 가지가 복음의 중요한 양면입니다. 둘 중 어떤 것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이 두 가지가 우리를 완전하게 새롭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성경구절

  • 에스겔 36장 24~26절
  • 요한복음 3장 3절
  • 시편 104편 30절
  • 시편 51편 2절
  • 시편 51편 10절
  • 디도서 3장 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