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평화의 왕 예수님

by blogstar posted Jan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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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마태복음 5장 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아멘!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시다. 이사야서 9장 6절에 예수님의 이름 가운데 하나가 ‘평화의 왕’이다 이스라엘 나라 말로 읽으면 ‘평화’ ‘샬롬’. 여기 ‘왕’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가 아니고 ‘싸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싸르’는 대 제사장이다, 제사장 중의 어른 혹은 군대장관, 군대의 제일 우두머리. 이런 어떤 집단의 제일 우두머리라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는데 특별히 군대용어로 ‘싸르’라는 말은 말씀드린 대로 ‘군대장관’이라는 표현이다.

이 평화라는 말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화라는 말 자체가 단순히 그저 싸움하지 않고 평안하다 그런 개념이 아니고 ‘샬롬’이라는 단어는 어떤 없어진 부분을 다시 완전하게 채운다는 뜻이다. 가져간 것을 도로 갚는다, 그래서 완벽하게 채운다. 그래서 ‘완전’이라는 말로도 번역한다. 이 단어는 동사로 쓰일 때는 원래 있던 것을 채운다, 빚 갚다는 동사의 경우에 사용되었다. 그래서 이 샬롬은 분명히 어떤 죄와의 투쟁에 있어서 주님께서 우리의 죄의 빚을 다 갚으심으로 오는 평화라는 단어로 실제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에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하셨던 인사가 ‘샬롬’이다. 부활하셔서 그가 인간의 모든 죄인의 죄 값을 갚으신 뒤에 빚 갚았다는 영수증을 보이신다. 요한복음 20장 20절 손과 옆구리를 보이신다. 못 박힌 못 자국 난 손과 찢어진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다시 21절“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찌어다” 그래서 이것이 분명히 주님께서 죄 값을 다 갚으신 영수증으로서 제시되었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이사야 9장 6절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대로 그는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셨고 한 아들로, 사람으로, 인자로 오셨다. 그래서 그가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시므로 우리의 죄 값을 갚으신 평화의 왕으로, 평강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왕이라는 단어가 군대 용어로 이곳에서는 실제로 사용되었고, 성소 개념으로 제사장, 대 제사장의 의미로도 읽을 수 있다.

평화의 직분

주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냥 평화롭게 지내게 해주시고 서로 싸우지 않게 해주시는 그런 어떤 평화로운, 우리가 말하는 그저 편안하고 다투지 않고 사는 그런 평화로운 삶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평화를 주셨을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우리 서로에게,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또 사람과 사람사이에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우리에게 주셨다. 평화의 직분이라고 흔히 말한다. 이 평화의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나누는 그런 은혜로운 직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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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1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화평케 하는 자라는 말은 주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구원을, 그 평화를 우리가 받을 뿐 아니라 세상에게 그 주님의 화평케 하시는 속죄의 은혜를 나누는 직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저 단순히 내가 노력해서 모든 사람과 평화를, 아름다운 관계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근본이 그게 아닌 것이다.

할례:용서받은 표

에베소서 2장 11절 이하에 당시의 초대교회에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큰 논쟁이 있었다. 그 논쟁거리는 바로 할례에 관한 논쟁이었다. 유대인들 가운데 먼저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침례)를 받고 다 좋다. 그러나 원래 우리는 할례를 받았던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므로 너희도 할례를 받아서 유대인이 되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언약에 들어갈 수 있다고 실제로 그런 주장을 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얘기 했다. 그 할례는 세례(침례)로 이미 대치되었다.

할례라는 것이 남자 아이들의 포경 수술을 해주는 것이며 그것은 죄를 잘라낸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이미 구약에도 여러 번 할례는 마음에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신 30:6, 렘 4:4) 하나님께서 그렇게 직접 말씀하셨다. 이 할례 문제는 사실은 바울이 로마서 4장 11절에 말한 대로 그것은 믿음으로 내 모든 죄를 맡김으로 의롭게 된, 다시 말하면 죄를 용서받은 표이다. 그러니까 마음으로 내 죄를 주님께 맡기지 않으면, 믿지 아니 하면, 죄가 용서되지 아니하면 할례를 받는 것은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중요한 상징적인 의식이었다.

할례는 마음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 상태로 그냥 육신의 할례만 받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바울이 거듭거듭 말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분명히 말하기를 할례는 마음에 할 것이라고 로마서 2장 28, 29절에 말씀하신다. 그런데 마음에 하는 할례가 구약에 실제로 신명기 10장 16절에 기록되어 있다.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 예레미야도 예레미야 4장 4절에 말씀한다. 분명히 마음에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마음의 죄를 잘라내지 아니하고 그저 육신의 할례를 받음으로 자기들이 구원 얻었다는 증거를 나타내고자 했다. 분명히 예레미야 4장 4절“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의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여기서 마음의 가죽을 베라고 표현하신다. 죄의 가죽을 베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속하지 못한다. 마음이 죄로부터 벗겨져나가야 된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특별히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조차도 육신의 할례를 계속 주장했다. 그래서 그 문제에 관해서 교회에 큰 논란이 있었고 바울은 그 마음의 죄를 잘라내는 의식을 예수님이 세례(침례)식으로 대치하셨다, 죄에 대하여 죽고 장사되고 부활하는 그런 의식으로 다시 바뀌었다는 얘기를 해도 소용없이 그것을 계속 주장할 때 교회 안에 큰 논쟁이 특별히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었다.

그래서 바울이 그 이야기를 결론 내리면서 하신 말씀이 에베소서 2장 15절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기 위함이라” 16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분명히 요한복음 12장 32절에 인자가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고 말씀하신다. 이 이야기는 성소의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다.

화평케하는 자

성소의 마당에 있던 번제단에 누워있던 양을, 나무 위에 눕혀놓은 양을 들어 올린 것이다. 그래서 참 양은 들어 올려졌다. 그래서 밖에 있던 이방인들이 볼 수 있게 했다. 번제단에 누워있는 양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양이 나무에 달린 채 들어 올려 졌을 때는 밖의 담이 필요가 없었다. 담 밖에서 다 보였다. 그래서 중간에 막힌 담을 다 허셨다고 바울이 그렇게 표현한다. 상징적인 이야기이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보면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고 말씀한다. 그래서 중간에 막힌 담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번제단에 누웠던 양을 들어 올렸을 때 성소 밖에 있던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 되셨다. 무엇으로? 자기의 죽음으로, 자기의 희생으로! 되셨다.희생 없이 화평은 없다, 평화는 없다. 자기가 죽지 않는 한 평화는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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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평화다. 실제로 화평케 하는 자는 누구인가? 예수님 자신이시다. 그분은 진정으로 우리의 화평이시다. 모든 종교적 갈등, 신앙적 갈등, 어떤 갈등 속에서도 주님은 당신이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우리에게 평화를 남겨주셨다. 우리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은 특권이다. 진정으로 우리도 자신을 희생하여 예수님과 같은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9절
  • 이사야서 9장 6절
  • 요한복음 20장 19절
  • 요한복음 20장 20절
  • 이사야 9장 6절
  • 고린도후서 5장 19절
  • 에베소서 2장 11절
  • 신명기 30장 6절
  • 예레미야 4장 4절
  • 로마서 2장 28,29절
  • 신명기 10장 16절
  • 예레미야 4장 4절
  • 에베소서 2장 15절
  • 요한복음 12장 32절
  • 에베소서 2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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