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은혜의 선택-2

by blogstar posted Mar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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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믿음

이제 11장으로 가 보자. 로마서 11장 1절로 7절 사이에 바울이 유대인 사도로서 이방인들 앞에서 자기 백성을 하나님께서 여전히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로마서 11장 5절에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엘리야 시대부터 남은 자가 있었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로마서 11장 5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이 남은 자는 무엇인가?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말씀은, 이 남은 자는 은혜로 된 것이다.

로마서 11장 6절,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또 다시 남은 자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들의 모습, 은혜와 믿음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구약에서 참 놀라운 말씀들 중 하나를 찾을 수 있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믿음의 조상이다. 그는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람이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자기조상 아브라함에 대한 말씀을 나누면서 하나님 앞에 그런 기도를 드린다.

느헤미야서에 나타난 아브라함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하고 좀 다르다. 느헤미야 9장 8절 말씀 서두에 “그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여기 참 놀라운 말씀이 있다. 여기에 나타난 ‘충성되다’는 말, 아브라함의 마음이 충성되었다. 우리말의 번역은 충성됨이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말은 ‘아만’이라는 동사의 수동태를 썼다. 소위 히브리 문법으로 강조 동사다.

다시 그대로 직역하면 ‘아브라함의 마음이 견고하게 되어져서’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의지해서 아브라함의 심장이 아주 강하게 되어졌다. 강건하게 되어졌다란 말이다. 자기 스스로 서서 자기가 자기를 든든하게 했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이 믿음이란 단어는 여러 차례 말씀했지만 의지할 기둥이 있어서 그 기둥에 의지하므로 견고하게 되어지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이 믿는다는 히브리말은 사역형 동사를 썼다. 견고하게 되어지도록 했다. 사역형, 맡겨서 무엇을 시킨다 그런 뜻이다.

다시 말하면 자기 스스로 서서 충성되고 견고한 것이 아니다. 여기 분명히 느헤미야 9장 8절 말씀은 아브라함의 마음이, 아브라함의 심장이 하나님의 품에 자기를 의지해서 든든하게 되어졌다. 그것을 충성되어졌다는 말로 표현했다. 헬라말도 비슷하다. ‘충성되다’는 말이 ‘피스토스’이며 이 말은 ‘피스티스’ ‘믿음’이라는 말의 형용사 형이다. 똑같다. 피스튜오 동사의 형용사이다. ‘맡긴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충성’이라고 표현했다.

요한계시록 19장“충신과 진실이라” 그것은 다 같은 종류의 말들이다. ‘피스토스’이다. 그 말들의 뜻은 다 똑같이 그가 하나님 앞에 자기를 온전히 의탁하여서 우리의 믿음의 모본이 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브라함의 충성됨은 그가 하나님께 자기를 완전히 의뢰하고 맡긴 결과이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마치 지주대 처럼, 그 강한 기둥 같은 그분의 품에서 그가 아주 든든하게 기대어져서 흔들리지 않았다는 표현이다.

하나님께 완전히 의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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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은혜라는 말이 나타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남은 자들이 하나같이 하나님께 완전히 의뢰하므로 그들이 든든하게 세워졌다. 그렇게 든든하게 세우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이 남은 자 사상은 자기가 특별히 선해서, 혹은 충성되거나, 열심 있어서, 자기 마음의 심지가 굳어서 하나님께서 남은 자로 삼았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해다. 본인이 아무리 심지가 굳고 아무리 의지가 굳을지라도 기댈 데가 없는 그 마음은 언젠간 넘어지게 되어 있다. 인간의 의지는 언젠간 넘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의지는 영원히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맡겨져야 한다.

시편에 다윗이 그토록 많이 얘기했던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산성이시다. 우리가 든든하게 세워지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영원히 정복할 수 없는 산성이 되시고 방패가 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든든하게 세워져 있는 것이다. 이 남은 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천이라는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 완전히 자기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엘리야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남은 자로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기를 맡기는 신뢰를 통해서 하나님의 붙드시고 보호하신 은혜로 남은 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남은 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말은 분명히 어떤 혈통적인 이스라엘이 아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같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말은 분명히 하나님의 선하심에, 하나님의 사랑에 모든 것을 다 맡기고 그 은혜를 끝까지 의지한 자이다. 예를 들면 손자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떼를 쓸 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절대로 안 주고는 못 베기는 그런 믿음이 아이들 마음속에 있다. 그러니까 야곱이 하나님을 그렇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야곱이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이다.

그가 자기 집에서 도망 나올 때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그를 만나시고 그 거짓말쟁이, 어떻게 보면 도둑질 하고, 부모를 속인 그 죄인에게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라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는, 그가 받은 하나님의 축복은, 용서는 그의 삶을 계속 지배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벧엘의 하나님을 기억했다. 자기를 용서하신 하나님을 기억했다.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그러니 그가 얍복강에서 에서를 만나기 바로 전에 죽음을 앞에 둔 그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축복할 수밖에 없는 분이라는 사실에 대한 믿음이 그로 하여금 그날 그렇게 주님을 붙들게 하였다.

야곱이 이긴 것은 야곱이 이기려고 해서, 믿음이 있어서 이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넣어준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 때문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주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사랑의 주입을 받고 그 사랑을 붙잡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런 주시지 않으시고는, 용서하지 않으시고는,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붙든 자들이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힘이 없어서 진 것이 아니다. 절대로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 사랑이 야곱의 마음속에 다시 확인이 되면서 야곱은 그 사랑을 붙들고 매달렸다.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한 것이다. 야곱에게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을 은혜라고 한다.

남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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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남은 자들이 생겨나고 바로 그 사람들을 구약은 이스라엘이라고 말하였다. 자신들의 선함을 자랑하거나 자신들의 믿음을 자랑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에게는 주시지 않고는, 용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붙잡은 자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시는 사랑과,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붙든 그 믿음이 하나가 되었을 때 남은 자가 탄생한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마태복음 8장 1절에 나타난 그 나병환자처럼 자기를 용서하시고 치료하실 수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서 일부러 그 사람이 가장 가까이 뛰어 올 수 있도록, 사람들을 뚫고 들어올 수 있는 산 가까이에 오셔서 그가 보는 앞에서 환자들을 그렇게 치료하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내가 너를 치료할 수 있다’고, ‘내가 너를 용서할 수 있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 줄때에 이 나병환자는 군중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사람들이 돌을 들어 자기를 쳐 죽일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간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주님 앞에 던지며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원하노니 내가 너를 치료하러 이 땅에 왔다. 너를 용서하려고 이 땅에 왔다. 원하는 것은 네가 아니고 나였다. 내가 너에게 사람들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내가 너를 치료하기를 얼마나 원하는지를, 너를 사랑하고 용서하기를 얼마나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노니, 원한 것은 나였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붙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이스라엘이다.

그래서 여기 놀라운 사실은 로마서 11장 24절 가운데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말한다. 이방인들이 하는 어떤 잘못된 오만한 태도, 이스라엘은 버렸고 우리는 선택됐다고 하는 그것이 이스라엘은 완악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이제 순번이 돌아와서 자기들을 구원하셨다고 하는 오만한 잘못된 태도에 대해서 바울은 분명히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로마서 11장 11절로 15절 사이에 보면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너희들 너무 자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넘어져서 너희 이방인이 구원 얻었는데 유대인이 다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에 이르면 그들에게도 똑같은 더 풍성한 은혜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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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는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 이웃들에 대해서 상당히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은혜를 받은 사람들,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그런 생각들을 한다. 내가 믿음이 좋아서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고 이렇게 잘 사는 줄을 안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분명히 세상을 사랑하셨다. 예수 믿을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것이 아니다. 바울은 때로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고, 자기들을 사랑하신다고 하는 경멸을 표시할 때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여기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성경절이 있다. 로마서 11장 15~25절 사이에 보면 우리말로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라고 번역했다. 여기 ‘수’라는 말은 없다. 헬라 말은 그냥 ‘충만함’이다. 이방인의 충만함 이게 과연 무엇을 나타내는가? 꼭 숫자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이방인들이 들어올 것을 나타낸다. 로마서 11장 25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여기 저자가 말씀한 대로 온 땅에 복음이 전해져서 정말로 이방인들 가운데 복음이 충만해지는 상태,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세상 끝이다. 그러면서 바울이 그런 어떤 시대적인 상황이 오면 유대인들 가운데 또 구원 얻을 사람이 올 것이다라고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편재성 때문이다. 유대인을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이렇게 충만하게 전해졌지만 유대인들에게도 끝내 그 복음이 갈 것이다.

유대인들 가운데도 말세에 구원 얻고 돌아오면 특별히 복음을 위해서 위대하게 변증할 사람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을 신약학자들이 대체로 인정하는데 이것을 온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이것은 성서적인 해석이 아니다. 26절에 온 이스라엘이 구원 얻으리라 하신 이 온 이스라엘은 이방인 가운데 구원 얻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민족가운데서 참 믿음으로 이스라엘이 된 자들, 이 모두를 아울러서 믿음을 물려받은 ‘온 이스라엘’이라고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이 바울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리스도의 정신을 계속 반복해서 볼 수 있다. 바울은 정말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다함이 없는 사랑, 어떤 누구도 차별하지 아니하고 어떤 누구도 고려해서 제외되지 아니하고 모두를 끌어안고 품에 안는 그리스도의 이 정신이 이 사도바울 속에 가득한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로마서는 그러한 놀라운 그리스도의 영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여러분,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 안에서도 서로를 차별화하는 경향이 있다. 돈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많이 배운 사람은 적게 배운 사람을, 교회에 오래 나온 사람은 이제 나온 사람을, 죄가 좀 덜하다고 하는 사람은 죄를 좀 많이 지은 사람들을 멸시하는 이러 악한 풍습들을 우리는 몰아내야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시기를 바란다.

키워드 : 로마서11장, 그리스도의영, 이스라엘, 남은자, 칠천인, 야곱, 얍복강, 충만한수

성경구절

  • 로마서 11장 1절로 7절
  • 로마서 11장 5절
  • 로마서 11장 6절
  • 느헤미야 9장 8절
  • 요한계시록 19장
  • 마태복음 8장 1절
  • 로마서 11장 24절
  • 로마서 11장 11절로 15절
  • 로마서 11장 15~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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