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계속되는 회개

by blogstar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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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모두 맡기는 믿음

이 회개의 이야기 가운데서 우리가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한 것은 잃은 양의 비유 가운데서 예수님께서 이 양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이야기이다. 양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바로 양이 동의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해 달라고 선택하지 않는 이상 목자는 억지로 양을 집으로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양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목자가 찾아와서 집에 가자고 할 때에 그 목자의 사랑에 동의하고 그 사랑에 맡기는 일이었다. 우리가 이것을 흔히 믿음이라고 말한다. 동의하고 선택하고 자신을 맡겼을 때에 목자는 양을 업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때때로 사람들 중에 “예수님, 찾아와 주신 것만 으로도,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여 주신 것만 으로도 너무 감사하니 그냥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저는 저의 죄 값으로 죽어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용서해 주신다는 말씀으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고 스스로 포기하는 이들이 있다. 상당히 양심적인 사람이다. 어쩌면 염치를 차리는 사람이다. 

때때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얌체 같은 짓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죄를 용서 받으려고 할 때에 죄는 내 놓지 않고 용서만 달라고 하는 사람들, 세상도 즐기고 하늘나라도 가겠다는 사람들이다. 여러분, 결코 두 가지는 취할 수 없다. 반드시 하나는 버려야 한다, 포기해야 된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될 사실은 예수님께서 이 양을 찾아오시고 집으로 가자고 요청하실 때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좀 더 정확히는 우리는 예수님 등에 스스로 올라가서 업힐 수 있을 만한 힘도 없을 수 있다. 어쩌면 다리가 부러졌고 몸이 다 상해서 움직일 수 없을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목자가 어떻게 양을 업었는지를 상상해 볼만하다. 그것은 목자의 본능적 사랑이 양을 찾아서 앞다리 뒷다리를 들어서 목자가 스스로 양을 어깨에 멘 것이다. 그 일에 거절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지 않고 그분에게 맡겼을 때에 내 힘이 아닌 예수님의 손이, 목자의 손이, 양의 앞다리 뒷다리를 잡아서 목자의 힘에 의해서 양은 등에 업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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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맡긴다’는 말이 ‘믿음’이라는 성경의 단어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고 말할 때는 첫째로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맡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동의! 아주 중요한 단어이다. 동의하지 않는 이상, 선택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 업고 가시는 것은 목자가 하는 일이지만 양은 반드시 그 사랑에 자기를 맡기는 선택을 해야 된다. 그렇게 할 때에만 갈수 있다. 이 맡기는 믿음, 이 맡기는 믿음이 성경에 나타난 믿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맡기는 일을 못하고 심지어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 제가 어떻게 감히 예수님 등에 업히겠습니까? 제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예수님이 앞에 서시고 먼저 가시면 제가 예수님을 잘 따라 가겠습니다.” 소위 예수님을 본받겠다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어쩌면 흉내라도 내 보겠다. 사랑도 희생도 용서도 내가 해 보겠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예수님을 우리 힘으로 스스로 따라 갈 수 없다.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다. 

예수님 등에 업혀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따라가는 것 외에는 우리 죄인들이, 우리 양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무것도 없다. 죄에 익숙한 우리들이 어떻게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용서하고 살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흉내는 낼 수 있어서 몇 번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기억하라, 예레미야가 말했듯이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없고 얼굴이 검은 흑인이 아무리 비누로 씻을지라도 얼굴이 새롭게 희게 될 수 없는 것처럼 죄에 익숙한 우리는 결코 예수님처럼 살 수 없다. 예수님께 맡기는, 등에 업혀서 가는 이 믿음을 우리가 다시 한 번 새롭게 하고 이것을 훈련하여서 익숙해지도록 연습하는 것이 너무 너무 중요하다. 

끊임없이 회개하라

바울은 이 이야기를 고린도전서 15장 31절“나는 날마다 죽노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날마다 순간마다이다.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일회적인 경험이 아니다. 한번 회개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순간마다 날마다 죽는 경험, 죄에 대해서 죽는 경험이 계속 되어야 한다. 그것은 용서의 사랑에 죽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하신 사랑에 끊임없이 자기를 믿음으로 맡기는 것이다. 

바울이 회심한 다음에 그가 쓴 로마서 7장의 경험을 보면 그가 이미 용서 받고 거듭난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모르는 죄가 자기를 끌고 가는 것에 심히 통곡하는 것을 보게 된다. 로마서 7장 6절 “이제”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이제는 의문에 글자에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그 문자를 따라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영의 새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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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새로움이라고 말할 때는 우리가 율법을 문자대로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 영은 여전히 죄의 아래 있다. 그런데 이 영이 새롭게 되어서 소위 거듭남의 본성이다. 이 거듭남의 본성 속에서 우리가 사는데도 불구하고 거듭남의 상태에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로마서 7장 17절“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이 그렇게 절규했던 이유가 이것이다. 

로마서 7장 24절에서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통곡한다. 사도바울 안에 두 본성이 생겼다. 예수님의 마음과 본래 자기가 마귀로부터 받은 죄의 마음, 이것이 가끔 충돌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 죄의 본성이 자기를 업어다가 죄 아래에로 끌고 가서 죄의 노예가 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이 회심한 다음에 새로운 본성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 아래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거듭 거듭 성령을 따라 행하고 육신을 따라, 다시 말하면 죄의 본성을 따라 행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가 끊임없이 성령을 따라 행하라, 성령을 따라 행하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골로새서 3장 3절에 우리가 죽었고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다고 말하고 나서 한 절을 뛰어 넘으면 골로새서 3장 5절에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죄의 본성이 여전히 우리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새 본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옛 본성이 남아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그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의인이자 죄인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새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본성이 여전히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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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하고 있다.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 주님의 용서에 매달리고 어깨에 매달려서 내려오지 않는 것, 사단이 우리를 충동질 하고 우리를 끌어 내리려 할 때마다 우리의 죄 된 본성이 우리를 좌절 시킬 때마다 우리는 우리를 업으신 우리 주님의 어깨에, 목에 끝까지 매달려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을 그치지 않는 회개 혹은 그치지 않는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 1장 16-17절에 말한 대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분에게 맡기는 믿음 외에는 우리가 살아남을 길이 없다. 우리는 때때로 사단으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우리를 실망시키고 좌절시킨다. 그때마다 예수님의 용서의 등에서 내려오지 않고, 그분의 목을 안고, 우리를 업으신 우리 주님의 손을 의지하고, 우리 아버지의 집까지 잘 가야 된다. 그것이 회개한 사람의 삶이다. 그것을 성경은 거듭 거듭 회개와 믿음이라고 말한다. 

믿음으로, 맡김으로 끊임없이 우리 주님께로 돌아가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업으시고, 아버지 집에 가실 때까지, 도착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우리를 놓지 않고, 우리를 어깨에 메시고, 우리를 데리고 가시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시편 139편에 내가 땅 끝에 갈지라도 바다 끝에 갈지라도 하늘 끝에 갈지라도 거기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말씀했다. 그분의 임재는 온 우주에 충만하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가슴에 안으셨다. 시편 139편 5-6절“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우리의 전후를 두르시고 우리 머리에 안수하시고 우리를 품에 안고 계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다 우리를 용서의 가슴에 안으셨다. 우리 모두 그 가슴속에서 끝까지 맡기고 아버지 집까지 잘 가기 바란다.

키워드 : 회개, 양, 목자, 믿음, 맡긴다, 로마서, 거듭남, 죄, 골로새서, 본성 

성경구절

  • 고린도후서 15장 31절
  • 로마서 7장
  • 로마서 7장 6절
  • 로마서 7장 17절
  • 로마서 7장 24절
  • 골로새서 3장 3절
  • 골로새서 3장 5절
  • 고린도전서 15장 31절
  • 로마서 1장 16-17절
  • 시편 139편 5-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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