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율법의 저주가 되신 예수님

by blog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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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

요한복음 3장 14, 15절,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우리는 이 광야의 뱀이 나무에 달렸던 사실을 확인한다. 장대에 달라고 말씀하셨다. 민수기 21장 8절, 나무에, 장대에 달라고 말씀하신다. 

이 나무는 저주라는 말과 함께 실제로 사용되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고 말씀한다. 여기 나타난 나무는 창세기 3장 14절에서 뱀에게 내렸던 저주, 그것이 바로 선악과나무에 앉아서 선악과를 따먹던 그 뱀에게 내린 저주인 것이다. 본래 이름은 용이다. 요한계시록 12장 7~9절에 이 용이 옛날 뱀의 모습이라고 하고 있다. 날개와 손발을 가진 뱀이다. 그래서 날아왔고 선악과를 따서 먹었다.

여러분은 용의 모습을, 종종 나무를 감고 올라가 있는 용 혹은 나무로 만든 지붕위에 있는 용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하나의 오래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용이 선악과를 먹고 뱀이 된다. 손발과 날개가 없어진 모습이다. 몸만 남은 용의 모습이다. 이 나무는 분명히 선악과나무이다. 분명하게 본래 이름대로 말하면 ‘선악의 지식의 나무’이다. 

우리말은 ‘선악의 지식의’를 ‘알게 하는’이라는 말로 풀어썼다. 본래 히브리말은 지식이다. 영어로도 그렇게 번역했다.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knowledge 지식,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인가? 그것은 분명히 율법이다. 하나님의 율법, 율법은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를 가르쳐주는 기준이다. 율법이 없다면 우리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우리 마음에 당신의 법을 기록하셨는데 그것을 실제로 알게 하는 시험지 역할을 하는 것이 선악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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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의 의미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준 사랑을 다 받고 그 다음에 그 사랑을 누리고 내가 너희에게 그 사랑을 준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것이 선악과라고 하셨다. 그냥 다 먹으라고 했다면 누가 이 사랑을 주었는지 기억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선악과를 따로 두신 것은 선악과는 내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준 아버지다, 장본인이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다. 선악과, 내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준 아버지다, 주인이다. 라는 사실을 알게 하신 것이다. 

선악과를 따로 두신 것은 선악과는 내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준 아버지다, 장본인이다.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함이었다. 선악과, 내가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준 아버지다, 주인이다. 라는 사실을 알게 하신 것이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시켜주는 어쩌면 시그널과 같은, 신호와 같은 역할을 한 채 에덴동산 중앙에 서 있었다. 그것을 먹어버린 것은 하나님을 먹어버린 것이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버린 것이다. “먹지 말라, 먹으면 죽으리라는, 틀림없이 죽으리라”는 그 말씀을 먹어버린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놀라운 반역이다. 

사단이 담대하게 이 선악과를 먹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하와에게 말하기를 ‘네가 먹는 날에는 네가 하나님처럼 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에 네가 못 먹게 한 것이다 바보야, 내 말을 들어봐라, 내가 이것을 먹어도 죽지 않지 않느냐? 이것은 먹어서 죽는 음식이 아니야. 네가 이것을 먹으면 네가 하나님처럼 될 것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에 그것을 못 먹게 한 거야. 먹어봐’라고 말한다. 드디어 먹었다. 누구 말대로, 먹어봐야 누구 말이 맞는지 아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막으실 수 없어서가 아니라 막으시면 안 되었다. 그것은 영원한 의심, 영원한 불신을 만들어 낼 것이었다. 못 먹게 하면 마귀 말이 맞는지 아버지 말이 맞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나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곁에서 그것을 보고 계셨다. 그것을 막으실 수 없었던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영원한 사랑, 영원한 절대 자유 의지를, 자유를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은 그 광경을 보고 계셨다. 

사단이 담대하게 이 선악과를 먹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막으실 수 없어서가 아니라 막으시면 안 되었다. 그것은 영원한 의심, 영원한 불신을 만들어 낼 것이었다. 못 먹게 하면 마귀 말이 맞는지 아버지 말이 맞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하나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 곁에서 그것을 보고 계셨다. 그것을 막으실 수 없었던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영원한 사랑, 영원한 절대 자유 의지를, 자유를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다.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은 그 광경을 보고 계셨다.

드디어 이 선악과를 먹었을 때, 아버지께서 용과 같이 저주를 받고 이 나무에 매달렸어야만 했다. 용이 손과 발을 잃어버리고 뱀이 되었을 때, 몸만 남은 용이 되었을 때, 이 뱀이 나무사이 가지에 온 몸을 비틀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안간 힘을 다해 자기 몸을 기대고 있다가 힘이 없어서 떨어지고 땅으로 기어 다니는 동물이 된다. ‘나무에 달린 자는 곧 저주를 받은 자’라는 말이 처음으로 창세기 3장 14절에서 생긴다.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가? 율법의 나무이다.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이다. 율법을 시험 친 시험지에서 아담과 하와는 보기 좋게 낙방을 한다. 뱀과 같이 저주를 받게 된다. 이 저주가 사 천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다음 아담을 대신해서 한 사람이, 저주받아 죽어야 되는 마지막 아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담을 끝내는 아담이다. 죽어 마땅한 아담으로서 돌아가시는 마지막 아담으로 예수님은 오신다. 그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신다. 

죄의 결과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될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속량하시고 당신이 대신 이 율법의 저주 아래에 매달린다. 나무에 달린 이유가 그것이다. 마땅히 매달렸어야 될 아담 대신 사 천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다음 한 사람이, 한 아담이 거기 매달린 것이다. 왜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그것은 죄의 결과를, 죄의 마지막 열매를 보기까지는 죄가 무엇인지를 몰랐었던 온 우주와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죄인들에게 그 죄의 마지막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사천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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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매달렸어야 될 아담 대신 사 천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다음 한 사람이, 한 아담이 거기 매달린 것이다. 왜 이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죄의 결과를, 죄의 마지막 열매를 보기까지는 죄가 무엇인지를 몰랐었던 온 우주와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죄인들에게 그 죄의 마지막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사천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였다.

갈라디아서 4장 1절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라고 말한다. 이것은 놀라운 이야기이다. 아담과 하와 자신도 몰랐다. 이 우주에 있는 타락하지 않은 거민들과 천사들도 죄의 마지막 결과가 무엇인지를 몰랐다. 죄가 얼마나 기가 막힌 것인지를 아무도 본 일이 없다. 그래서 죄의 결과, 이 땅에 온 수많은 슬픔과 고통과 말할 수 없는 아픔들이 인간을 점, 점, 점, 점, 망가뜨리고 망가뜨려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인간은 거의 사단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망가졌을 때 예수님은 슬프게, 슬프게 우시면서 망가진 우리를 보시고 통곡을 하셨다. 사랑밖에 할 줄 몰랐던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창조되었던 아담이,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아들이 어느 순간 점점 타락해서 자기밖에 모르는 독사의 자식이 된 것이다. 예수님이 통곡하면서 하셨던 말씀이다. “독사의 자식들아!” 그것은 저주의 소리가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그분의 고통의 눈물이었다. 우리를 보시고 통곡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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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가장 잘 믿고 바르게 산다는 바리새인들, 그 회칠한 위선자들을 보시고, 우리를 보시고 통곡하시던 예수님의 모습이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유전자로, 하나님의 본성으로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사랑밖에 할 줄 모르는 하나님의 본능적 사랑의 유전자로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한다. 

본능적으로 철두철미하게 자신밖에 모르는 독사와 같은 우리의 이기심과 자기사랑의 종자를, 그 죄의 씨를 영원히 없애시기 위해 그 씨를 본인이 끌어안고 영원히 돌아가심으로 그것을 없애시고, 우리를 다시 만들어 주시지 않는 한 그 어떤 방법으로도 그 죄는, 그 씨는 없어질 수 없었다. 저주 받아서 영원히 없어져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을 율법의 저주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율법의 저주라는 말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율법은 반드시 그 무시무시한 죄악의 씨앗을 없애야만 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 죄를 심판하고 없애야만 했다. 영원히 저주하셔야만 했다. 하나님은 ‘죄인’을 저주하신 일이 없다. 하나님은 오직 ‘죄’를 저주하셨다. 저주하신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자기 아들’이다.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한 분을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하나님은 저주하셨다. 그리고 우리 중 어떤 사람도 저주하지 못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셨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그분은 영원한 죄 없는 몸으로, 죄 없는 씨로 부활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그 영광의 몸으로, 죄 없는 유전자로 다시 부활시켜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다시 반복한다. 너무 소중한 말씀이다. 빌립보서 3장 21절, 그가 우리를 다시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약속하신다. 그 놀라운 생명의 부활에 우리 모두 다 참여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키워드 : 율법, 저주, 모세, 광야, 뱀, 나무, 십자가, 선악과, 죄, 창세기, 요한복음, 갈라디아서, 부활 

성경구절

  • 요한복음 3장 14~15절
  • 민수기 21장 8절
  • 갈라디아서 3장 13절
  • 창세기 3장 14절
  • 요한계시록 12장 7~9절
  • 고린도전서 15장 45절
  •  
  • 갈라디아서 3장 13절
  • 갈라디아서 4장 1절
  • 빌립보서 3장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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