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

by blogstar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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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사랑과 희생을 생각하라

주님께서 해산의 고통을 치르신 그 고통의 크기나 깊이는 우리가 영원한 세월을 통해서 연구해야 될 과학일 것이다.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마치 바다 같다고들 흔히 말한다. 그 영원한, 무한한 희생, 자신을 영원히 버리셨던 그 희생, 그리고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신 그 희생, 그 희생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기를 원하시고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충만 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에베소서 3장 18, 19절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그 고난을 치르신 그 산고의 고통, 그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크기를 깨달아 아는 것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축복이요 특권이다.

히브리 3장 1절에는 그 사실을 사도바울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냥 피상적으로가 아니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을 주셨으니 라는 말이 성경에 기록되어있지 않고 자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주셨으니 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타난 독생자를 주셨다는 그 독생자라는 말이 한글 번역이 조금 아쉽다. 본래 말은 독자이다. ‘생’자가 사실 없다. 헬라어로 ‘모노게네스’라는 단어인데, ‘모노’는 말 그대로 하나라는 뜻이다. ‘게네스’는 ‘기노마이’라는 동사의 명사형 중 하나이다. ‘있다’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나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모노’라는 것도 숫자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세기 22장 2절에 보면 ‘모노게네스’라는 단어가 구약성경 원어 ‘야히드’라는 단어로 되어있다. ‘야히드’는 하나, 독자라는 말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 본래 말뜻은 ‘야하드’라는 동사의 명사이다. ‘야하드’는 접합, 붙어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야히드’는 숫자가 하나라서가 아니라 ‘아들과 아버지가 붙어있는 자’라는 뜻이다. 

실제로 이삭이 아브라함의 독자가 아니다. 그 형 이스마엘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삭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네 사랑하는 독자”, 너하고 붙어서 한 덩어리가 된 아들, 그렇게 독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계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기 때문에 그 사랑한다는 말은 자신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자신을 주셨는데 그 아들 속에서 자기를 주셨다. 아들과 아버지는 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아들을 주실 때는 아버지 자기 자신을 주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나오는 ‘독자’라는 단어는 결코 하나님과 예수님이 떨어져서 따로 계시고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예수님을 주셨다 그런 표현이라기보다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한 덩어리가 되셔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주시면서 자기를 주셨다는 놀라운 사랑의 표현이다.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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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정말 자기를 주시는 사랑의 표현 가운데 자기 아들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을 주시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사랑을, 도무지 불가능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이 온 우주에서 자기를 주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자기 아들을 주는 사랑인 것이다. 차라리 자기가 죽고 말지 자기 아들을 주시는 사랑, 그것도 자기 손으로 자기 아들을 죽이시는 사랑, 그 사랑은 정말 놀라운 사랑이다. 그보다 더 큰 사랑은 이 우주에 다시없다.

로마서 8장 32절에 같은 말씀을 바울이 한다.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아들보다 더 귀한 존재는 없다. 아들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하나님이 자기를 주시는 최고의 표현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번역하고 싶다. 요한에게 주셨던 영감을 나에게 주어 번역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할 것 같다. “하나님이 죄와 이기심에, 교만에 미쳐버린 우리 자식들에게 미치셔서 자기 손으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죽여 우리를 위해 바치셨다.” 참 목이 메이는 이야기다.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을까! 우리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예수님보다 자기 아들보다 우리가 더 소중하단 말인가! 

더럽기 한이 없고 정말로 회개할 가능성 전혀 없고 배은망덕하기를 물먹듯 하는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그렇게 우리에게 자신을 주신, 자기 아들을 주신 사랑, 자신의 손으로 자기 아들을 희생시켜 제물로 우리에게 바치셨던 그 사랑을 무엇으로 우리가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오직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오직 사랑만이 사랑을 낳는다. 오직 생명만이 생명을 낳는다. 

‘only love’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의 가사는 ‘오직 사랑만이 추억을 만든다’이다. 그 추억은 영원하다. 우리는 그 영원한 사랑의 이야기를 영원토록 기억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절에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때 새 예루살렘성의 그 가운데 가장 높은 중앙에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놀라운 주님의 사랑과 희생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 헬라어 원문에는 학살을 당한 어린양이라고 되어 있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다. 아주 처참하게 난도질을 당하신 어린양, 그 어린양이 영원히,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의 길이와 넓이와 높이가 얼마나 무한하고 영원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원한 세월을 통해서 영원, 영원, 영원무궁토록 그분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으로 우리와 함께 사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꼭 하늘에 가고 싶다. 가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랑을, 우리 아버지의 가슴을, 예수님의 가슴을 꼭 열어보고 싶기 때문이다. 정말 어떻게 그런 희생을 하셨는지! 우리가 어버이날이 되면 어머니 아버지에게 선물을 드리고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어버이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를 마지막 소절까지 다 부르기가 어렵다.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한 자식들이 눈물 없이 그 노래를 부를 수가 없다. 감히 인간 부모의 사랑을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과 어떻게 비교하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고리,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고리가 부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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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령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것은 돈도 아니고 이 세상의 현실적인 축복도 아니다. 정말 주시기 원하시는 것은 그분 자신이다. 그분 자신의 혼이다. 그분 자신의 마음이다. 그분 자신의 사랑이다. 자신을 오직 우리만을 위하여 구별하여 바치셨던 사랑, 그 사랑을 그토록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태어났을 때, 거듭났을 때에 우리의 삶이 언제까지 영원히 살면서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그 사랑을 되새기고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커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영원히 사는 것은 축복이다. 왜? 그 사랑의 더 넓고 더 크고 더 높고 더 깊은 사랑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도바울이 분명히 말한 하나님의 충만하심이다. 우주보다 크신 사랑, 어찌 그 사랑을 우리가 다 경험하고 누릴 수 있겠는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저 자신이 복을 받기 위해, 하늘나라 가서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지만 거듭난 사람은 아니다. 그 산고의 고통 그 사랑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경험했기 때문에 정말 하늘은 사랑의 충만의 나라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 사랑이 충만한 나라, 우리 주님의, 아버지의 사랑이 충만한 나라에 함께 있기를 바란다. 

키워드 : 거듭남, 사랑, 십자가, 해산, 예수, 지식, 독자, 아들, 아브라함, 이삭, 아버지 

성경구절

  • 에베소서 3장 18,19절
  • 히브리서 3장 1절
  • 요한복음 3장 16절
  • 창세기 22장 2절
  • 로마서 8장 32절
  • 요한계시록 22장 1절
  • 누가복음 11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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