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진정한 성화

by blogstar posted Jan 0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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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난 경험 후에도 아직 남아있는 죄의 본성

거듭 난 경험 후에도 죄를 이기지 못하고, 죄와 더불어 싸울 때마다 죄에게 끌려가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과 우리 속에 살아있는, 아직도 없어지지 아니한 죄의 본성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로마서7장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사도는 말하기를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고 말했다. ‘마음’은 헬라어로‘누스’라는 단어이다. ‘누스’는 본래 ‘이성’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로써 헬라 철학에서는 자동차의 운전대와 같이 우리의 정신적인 활동을 통제하는 것을 말할 때 사용하는 아주 중요한 단어이다.

‘누스’란 단어는 가끔구약의 히브리어 ‘루아흐’(영)라는 단어의 번역어이기도 하다. 즉 ‘영’, ‘이성’을 뜻하는 헬라어로 ‘누스’라는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제하실 때에 그 통제의 중심축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쓰였다.

로마서12장2절“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여기에서 쓰인‘마음’이라는 단어도 똑같은‘누스’이다. 우리 한글 번역은 이것을 ‘마음’이라고 번역했지만 본래는 ‘이성’이다. 이 전체적인 정신의 중심축이‘누스’(마음)인데 이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말은 ‘창조’를 뜻하며 ‘거듭난 새로운 본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로마서 7장 22절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결단코 이런 영적인 사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타고난 우리 육신의 본성 곧 근본적인 이 죄의 본성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 않는다.기뻐하지 않는다. 그런데 바울은 분명히 하나님의 법을 기뻐하고 있다.이것은 거듭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서7장15절“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그리고 17절“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죄가 죄를 짓는다고 분명히 바울은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거듭나지 않은 본성이 아니라 거듭난 본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안에 원치 않는 것을 행하는 ‘죄의 본성’이 있다는 사실을 바울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불법을 좋아 하는 것이다.죄를 좋아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거듭난 사람안에 죄의 본성을 남겨두셨을까?

선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본성으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안에 죄의 본성이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의 것만 사랑하고 신령한 것만 사랑하는 존재로 완전히 바뀌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하나님께서 거듭난 사람 안에 이 죄의 본성을 남겨 두셨을까?

첫째로, 에베소서3장18, 19절“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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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의 충만하심을 깨달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예수님의 용서의 바닥에 까지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하시는데 그것은 우리의 죄의 본성을 깨달은 만큼 우리가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좀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가 깊어지고 반복되는 경험은 동시에 우리를 용서하신 그 사랑의 깊이를 경험하게 한다.곧 예수님의 십자가가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커지는 경험이다. 성령께서 우리를 그 경험으로 데리고 가신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곧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아는 만큼 밖에 모른다는 사실이다.

누가복음23장34절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죄까지 가져 가셨다는 사실이다. 어디까지 용서하셨는지 이미 십자가에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우리의 모든 죄를 영원히 갚아 놓으신, 그 용서의 사랑의 깊이를 우리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의 죄의 깊이가 깊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를 거기까지 용서하신 사랑,그 사랑을 경험하게 하시는 은혜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용서는 절대로 한 번의 경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우리가 우리의 죄의 바닥에 내려갔을 때에 이 상태를 로마서7장18절에서처럼 ‘내 속에 선한 것이 없다’하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아 알기까지 성령께서 우리를 데리고 가신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삶의 성화의 경험은 회개의 본성, 즉우리의 죄악의 본성으로 내려가는 경험이라 할 수 있다.올라가는 경험이 아니다.

그리스도인 삶의 성화의 경험은 무엇인가?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 우리의 삶이 점점 변화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정확히 보면 허선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사람이 외적인 높은 수준에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은혜의 바다 속으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기가 막힌 죄악의 본성을 가진 죄인인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다.이것을 한마디로 성화라고 부를 수 있다.

잘못된 성화의 이야기는 항상 외적인 변화를 중시한다. 그래서 사람이 얼마큼 변화 되었는가? 외적으로 얼마나 변화되었는가?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성화의 한 면만을 보고 말하는 것이다.우리의 회개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용서의 사랑의 깊이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만큼 반비례해서 우리 삶의 외적인 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외적인 경험을 우리가 흔히 성품의 변화,겉으로 나타는 성품의 변화를 말한다. 이것을 성화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내적 경험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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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적 경험 없이도 사람이 겉으로 변화된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변화는 아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속에 죄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이 내가 날마다 죽노라고 한 경험은 이런 회개의 골짜기로 내려가면서 순간순간 죽음을 경험 하는 것이다. 죄에 대한 죽음이다.죄의 본성에 대한 죽음인 것이다.

두 번째로 왜 그 죄악의 본성을 남겨 두셨는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가 만약 우리 속에 가지고 있는 죄의 본성을 하나님께서 다 없애 버리셨다면 우리는 순간 우리의 죄가 생각나지 않는 상태, 그래서 계속 사랑과 선한 것만을 생각하는 천사 같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이야기다.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잘못하면 우리가 루스벨,사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단이 타락한 시작점이 어디인가?하나님 없이도 혼자,스스로 거룩하고 깨끗한 선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사랑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사단은 악이 되고 만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사단이 아직도 살아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을 완전히 없애 버리면 우리는 또 하나의 마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단이 타락한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직도 우리 안에 죄의 본성이 살아있게 하신 것이다. 그것 자체가 은혜이다.

키워드 : 성화, 본성, 로마서, 마음, 이성, 영, 누스, 루아흐, 바울, 용서, 사랑 

성경구절

  • 로마서 7장 25절
  • 로마서 12장 2절
  • 로마서 7장 22절
  • 로마서 7장 15절
  • 로마서 7장 17절
  • 에베소서 3장 18,19절
  • 누가복음 23장 24절
  • 로마서 7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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