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예수님의 믿음의 생애

by blog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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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믿음

지난 시간에 예수님의 믿음의 첫 번째 믿음의 시작,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께 자기를 맡기셔서 시작하셨던 그 맡김의 시작은 디모데 후서 1장 9절에 영원 전이라고 말씀 드렸다. 주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맡기셨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마태복음 1장 18절에 “성령으로 나셨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데, 이 성령으로 나셨다, 나실 자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으로’라는 헬라어는 ‘엑스’라는 전치사이다. ‘엑스’는 ‘밖으로 나와서’ ‘out of’라는 뜻이다. 성령으로부터 나오셨다. 

다시 말하면, 빌립보서 2장 6절로 9절의 말씀대로 그는 자기를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실 때에 성령께 자기를 맡기셔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도록 그렇게 자기를 맡기시는, 성육신(成肉身), 사람이 되신 사건에 있어서 하나님께 자기를 온전히 맡기시는 믿음을 보이셨다. 그리고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믿음의 세 번째는, 그 분의 삶 자체가 그는 자기가 스스로 삶을 살지 아니하셨다. 요한복음 5장 30절,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 완전히 맡긴 삶을 사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찾아서 보면 그 분의 말씀 자체가 자기 말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4장 10절,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가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당신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특별히 앞에는 ‘말씀’이라는 말을 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그리고 그 뒤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일’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흥미로운 것은 히브리말에 말씀이라는 말이 ‘다발’이라는 말이다. ‘다발’은 본래 뜻이 ‘말’이 아니고 ‘일’이다. 히브리어로는 ‘다발’과 ‘다발’ 같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은 그 말씀이 사건이 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병자들을 보시고 일어나 걸어가라 말씀하시면 그 말씀이 일이 되는 것이다, 사건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자기의 정체에 관해서 질문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자기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5장 25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말씀이 들어갈 때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다. 말씀이 사건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자기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자기 속에 계셔서 말씀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5장 21절에 같은 말씀을 하신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여기 하나님 아버지의 살리심, 그리고 그 아들의 살리심, 이 똑같은 단어, 똑같은 말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이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다. 예수님은 오직 자기 인생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고, 살아서 역사하시고, 일하시도록 자신을 믿음으로 맡겼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직 자기 인생을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고, 살아서 역사하시고, 일하시도록 자신을 믿음으로 맡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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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기를 맡기는 믿음의 예식을 세례(침례)식이라고 한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주님께서 세례(침례)를 받으실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셨던 말씀이 마태복음 3장 17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기뻐하다’는 단어가 나오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자’ 그 말은 예수님 자신이 그의 삶을 완전히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에, 목숨을 바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사업을 이루실 수가 있었다. 

‘기뻐하다’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헤페츠’라는 이사야 53장 10절에 나타난 같은 단어이다. 이 ‘기뻐하다’는 말씀은 실제로 감정이 섞인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사야 53장 10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뜻’이란 본래 히브리말이 ‘기쁨’이다.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는 것이 기쁨이다. 그 기쁨은 예수님을 제물로 바치셔서 우리 죄인들을 위한 죄 값을 치르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참으로 놀라운 사랑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셔서, 벌레만도 못한 더러운 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기쁨이었고, 뜻이었다는 것이다.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예수님을 보시고, 자기를 완전히 하나님께 맡기셨던 예수님을 보시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요한복음 3장 17절,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표현은 요한복음 10장 17,18절에 나타나 있다. 같은 표현이지만 17절에 예수님께서 이런 표현을 하신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다시 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같은 더러운 죄인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시는 것 때문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고 표현했다. 참 놀라운 사랑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 우리를 위한 사랑이었다. 우리 죄인들을 위한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시는 그 일이 아버지 하나님에게 예수님을 사랑하게 만든 사랑의 근원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요한복음 10장 18절,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자기 스스로 목숨을 버리실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시지만, 그것조차도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다면 그렇게 해달라는 부탁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실 수도 있고, 돌아가시지 않으실 수도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제안을 하셨을 때,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시는 그 거룩한 사랑으로 죽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노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이 놀라운 사랑, 그 두 분의 우리를 향하신 무한한 사랑, 어떻게 하면 자식들을 죄와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건지실 것인가? 그 두 분이서 그 놀라운 희생의 결정을 하셨고, 예수님은 자기를 사람이 되게 하시고, 죄인들 대신 돌아가시는 일에 자기를 믿음으로 맡겼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부활의 상징: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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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세례(침례)라는 것은 죄를 용서받고, 거듭나는 예식이지만, 마태복음 3장에 나타난 예수님의 세례(침례)식은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세례(침례)를 받으신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할진데, 이 세례(침례)의 본래 의미,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그리고 부활을 상징하는 이 세례(침례)식은 물에 실제로 장사되고 부활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래 기독교의 원래 예식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장사되심과 부활은 죄가 있어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할진데, 이것은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맡기신 믿음의 의식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님 자신이 자원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우리가 이런 희생을 치르자고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제안에 대답하시고 그렇게 자기를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셨다는 사실이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예수님이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곧 우리가 부활하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그 기쁨을 바라보시면서 십자가를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십자가형은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완전히 벌거벗기는 형이다. 예수님은 정말로 다 벗기신 채 못이 박히셔서 처참하게 돌아가신다. 그것이 예수님의 소원이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소원이었다. 그 아버지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아들은 자기를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히 제물로 바치신, 맡기신 것이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맡기신 믿음의 이야기이다.

성경구절

  • 디모데후서 1장 9절
  • 마태복음 1장 18절
  • 빌립보서 2장 6~9절
  • 요한복음 5장 30절
  • 요한복음 14장 10절
  • 요한복음 5장 21,25절
  • 마태복음 3장 17절
  • 이사야 53장 10절
  • 요한복음 3장 17절
  • 요한복음 10장 17,18절
  • 히브리서 12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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