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사랑이 만드는 믿음

by blogstar posted Jan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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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사랑에 자신을 맡기는 믿음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와서 병 고침을 받는다. 그 때 주님께서 늘 하셨던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은 “네 믿음대로 되라”

‘네 믿음대로 되라’는 말씀은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계속 배워 온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변하지 않는 사랑의 증거들을 본 사람들이 그 용서의 사랑 혹은 치유의 사랑에 자신을 맡기는 믿음을 통해서 열매가 맺혀진 것을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9장에 보면 12년을 혈루증으로 앓던 한 여인을 고치신 말씀이 나온다. 12년을 소위 피를 흘리는 혈루증, 무슨 병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마도 여자 분들의 어떤 생리적인 문제였을 수도 있고 다른 어떤 병이었을 수도 있다. 흔히 어떤 분들은 유전적인, 요즘으로 말하면 혈우병이 아니었을까, 혹은 어떤 분들은 암이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여러 가지 말들을 하지만 아무도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2년을 앓으면서 이 여자가 거의 모든 재산을 다 탕진하고 아마도 어떻게 보면 가족들에게도 버림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주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신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마태복음 9장 21절에 보면 “그 마음속에 그 겉옷만 만져도 내가 구원을 받겠다” 이 여인의 마음 가운데 희망이 생겼다.

예수님의 소식을 들으면서 아, 그분은 절대로 나를 거절하지 않을 분이다. 어떤 환자가 와도 다 치료해 주셨다. 그리고 어떤 종류의 병일지라도 다 치료해 주셨다. 그래서 그 마음속에 예수님이 주시는 그 믿음을 통해서 확신이 굳게 선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겠다고 남자들의 억센 다리 틈을 비집고 이 여인이 주님께로 가까이 갔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이 여인 옆에 자기를 만질 수 있도록 억센 남자들 틈에 비집고 오는 것이 힘들어 할 때 일부러 그 여인 쪽으로 몸을 움직이셨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예들은 성경에 꽤 많이 있다. 늘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찾아오시는 얘기이지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가는 얘기는 아니다.

범죄 한 아담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기가 막힌 심정으로 오셨을 것이다. 가슴이 헤어질 대로 헤어져서 오셨을 것이다. 죄인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아들을, 딸을 찾는 이야기가 성경의 이야기이다.

이때도 마찬가지다. 주님께서 그 여인 쪽으로 아마도 가까이 가셨을 것이다, 만질 수 있도록,언젠가 말씀 드렸지만, 구원의 공식은 분명히 첫 번째로 ‘은혜를 인하여’ 두 번째가 ‘믿음으로 말미암아’이다. 자신을 맡기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공식이다.

그러니까 은혜가 오지 않으면 아무리 내가 주님을 의지하고 만지려 해도 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주님께서 이 여인 옆으로 가셨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이 여인이 정말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낫겠다는 그 믿음이 생긴 것은 그 앞에 주님이 그를 치료하실 수 있다는 보증을, 확증을 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변치않는 사랑의 믿음

수많은 얘기를 통해서 확증을 얻은 것이다.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을 살리셨다!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 기어코 가야 되겠다는 믿음이 생겨나고 드디어 이 여인은 치유를 받게 된다. 똑같은 얘기들이 성경에 수도 없이 나온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믿음은 변치 않는 사랑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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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다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이 이야기가 갈라디아서 5장 6절에 그대로 기록이 되어 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다.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사랑이 믿음을 만드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이적들, 수많은 병 고치는 이적들과 죄를 용서하신 그 은혜는 모조리 이 예수님 마음속에 있었던 본능적 사랑의 열매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8장 1절로 4절의 말씀에 보면 문둥병 환자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는 문둥병 환자라는 통속적 표현보다  나환자라고 말하는 것이 좋겠다. 이 나환자 즉 한센 씨 병 환자가 예수님께서 자기를 치료하실 수 있을만한 거리에까지 가셨을 때에, 평소에 이 나환자들은 마을 밖에 살면서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갈 수 없다.

왜냐하면 부정하다고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돌로 쳤기 때문이다. 혹시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가야될 경우에는 미리 소리를 질러야 했다. “더럽다! 더럽다!”라고, 그렇게 하지 않고 갑자기 오면 돌에 맞아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 오셨을 때 기록에 의하면 산상수훈을 다 말씀 하신 다음에 내려 오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좇아오는데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이끌고 문둥병자 앞으로 가고 계셨던 것이다. 그 문둥병 환자가 어쩌면 숲속에서 숨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는 것을 그 환자는 보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그 나환자 앞에서 일부러 어쩌면 병을 고치는 것을 보여 주셨을 것이다. 그것을 보여 주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아버지 같은 본능적 사랑의 믿음을 이 나환자에게 주신 것이다.

나환자가 그 광경을 보고 있을 때에 확신이 생긴 것이다. 다시 한 번 희망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 나환자가 이제는 반대로  예수님께 자기를 맡기려고 뛰어 든 것이다. 그 당시의 법으로는 이 사람은 예수님 앞에 갈 수 없다. 사람들이 돌을 들어 치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인도 더럽다고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그런데 여기 보면 마태복음 8장 2절의 말씀, 아주 단순하다.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는가? 분명히 여기 말씀하시기를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였다고 하였다. 오면 돌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왔다고 기록이 되어있다.

이 상황을 보면 이것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예수님이 그 환자 가까이 가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어찌됐든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믿음, 사랑의 믿음,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고치러 왔다.” 그것을 주님께서 그에게 보이신다. 우리가 넉넉히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뛰어 들어와서 하는 말이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이 앉은뱅이도 소경도 다 치료해 주시는 것을 보았다.

우리를 구원해주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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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더니 예수님의 대답이 8장3절“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라” 내가 원하노니! 네 소원이 아니고 내 소원이다 말씀하신다. 하늘을 버리고 우주의 그 수많은 천천만만의 천사의 찬양과 경배를 뒤로하고 이 땅에, 더러운 죄의 땅에 오신, 연약한 인간의 육체를 쓰시고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하늘을 버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너에게 온 것은 너를 구원해 주기 위해서 왔다.

당시에 나병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이 나병은 하늘이 내리는 저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저주받은 사람들이 가끔 나환자가 된다. 모세의 누님이었던 미리암,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을 때 저주가 내린다. 갑자기 문둥이가 된다. 잘 아시는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요즘 같으면 금덩어리 같은 것이 욕심이 나서 엘리사 선지자가 시키지 않았는데 나아만 장군에게 가서 선생님이 돈이 좀 필요하다고 그래서 돈을, 옷가지와 보물을 얻어다 집에 숨겨두다 저주를 받아 나환자가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은 영영히 나환자가 되리라고 하셨다. 나는 성경을 읽다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이다. 그것 좀 죄 지었다고 세상에 영원한 나환자가 되리라, 좀 너무 심하지 않으신가? 그 집안은 저주받은 집안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말로 천민과 같은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자손대대로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했을 것이다.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건강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그 축복으로 방탕하고 타락해서 우상 숭배자들이 되었지만 이 나환자가 된 게하시의 후손들은 끊임없이 눈물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은혜를 구하는 백성들로 살았을 것이다. 아마도 어쩌면 이 환자도 게하시의 후손일 수 있다.

로마서 5장 20절“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느니라” 왜 예수님이 그들을 소위 그렇게 저주하셨을까? 그것은 정녕 사랑의 행위였다. 그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영적인 죄의 나병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신 은혜였다. 우리가 때때로 사람들에게 무시와 멸시를 당하고 짓밟힘을 당할 수 있다. 정말로 벌레 같은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감사해야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어떤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동시에 그런 죄를 용서하신, 우리가 받아야 될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분명히 예수님이 손을 대시며 라고 했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 이 나환자에게 손을 대시며 말씀 하시기를 “내가 원하노니” 네 소원이 아니라 내 소원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9장
  • 마태복음 9장 21절
  • 갈라디아서 5장 6절
  • 마태복음 8장 1-4절
  • 로마서 5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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