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아버지의 애타는 가슴

by blogmaster posted Jan 0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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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 것이라”

마태복음 6장 22절에 주님께서 “네 몸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눈이 열려서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눈에 남겨진 예수님의 목소리, 아름다운 우리 주님의 목소리,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시는 그 음성! 여러분, 여러분의 눈에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되기를 바란다.

이사야 43장 1절“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언젠가 내가 어렸을 때에 죄인인 내게 나타나셔서 하셨던 말씀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못 박히신 두 손을 펼치시고 내 앞에 나타나셔서 하셨던 그 주님의 목소리는 내 눈에 영원히 있다. “너는 내 것이라!(사43:1)”고 말씀하셨다.

 

오직 죄인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오직 죄인만이 그 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진정한 신앙은 죄인이 용서받은 이후로, 죄와의 모든 타협이 끝난 이후로 시작 된다. 오직 하나의 목적,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사랑의 헌신은 우리 주님의 용서를 받았을 때만 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일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에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자 함이라 빌립보 3장 13절 14절 그리고 8절에 바울 사도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우리 자신들이 자아를 사랑하는 사랑으로 눈이 흐려질 때는 결코 자신을 영원히 버리신 그 희생의 사랑의 주님을 뵐 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인들을 완고한 불신에 둘러싸이게 함으로써 사단은 죄를 없애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음이 요동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없을 때, 시험에 굴복하는 일이 시작이 된다. 주님께 자신을 완전히 바치려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우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 흑암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일부를 남겨두는 것은 사단을 초청해 들이는 초청장이다. 얼마든지 사단은 우리가 남겨둔 우리의 자아 사랑의 발을 디디고 우리 안에 다시 들어오는 것이다.

 

유일한 빛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하여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만 한다면 죄에 대한 방어벽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을 사단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 안에 죄악적인 욕망이 아직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영혼이 아직도 우리의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드리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온갖 방종은 하나님께 대한 반감을 강화시키고 끝내는 사단의 편에 서게 우리를 만들 것이다.

천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에서도 영적인 흑암은 빛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이 너무나 분명하다. 빛이 없으면 보지 못하는 것이다. 대낮과 같이 밝은 그 빛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영광이었다. 그 십자가의 빛은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고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 주셨다.

자기를 버리는 사랑! 자기를 영원히, 영원히 희생시킨 사랑의 빛만이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빛인 것이다.

 

어느 영혼이든지 구원의 희망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야말로 꺼져가는 심지일지라도 그 영혼은 아직 희망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그를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돌아설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는 결단코 우리에게서 돌아서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구약의 선지서를 공부하면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눈물을 보았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게 보여 준 선지자이다.

그의 머리통은 물통이 되었다. 그러나 끝내 그들은 하나님을 등지고 떠나간다.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노예가 되어 끌려간다. 이 바벨론의 노예가 되어서 끌려간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을 그래도 버릴 수 없어서 다시 하나님은 이 바벨론의 노예들에게 에스겔이라는 선지자를 보내신다. 다니엘이라는 선지자를 보내신다.

우리는 이 에스겔과 다니엘을 보면서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를 본다. 자신을 버리고 딴 남자에게 간 그 아내를 향해서 그는 다시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를 포기할 수 없다고 절대로 버릴 수 없다고, 그 자신을 버린 그 바벨론의 포로가 된, 노예가 된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다시 보내시는 하나님! 참, 그 사랑의 끝이 어디인지!

다시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결단코 버릴 실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보는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를 우리가 부를 때에 새 언약의 선지자 혹은 새 소망의 선지자라고 부른다. 특별히 에스겔 37장은 이 죽어버린 이스라엘을 다시 살려 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에스겔 골짜기에 그 죽은 뼈들을 다시 불려 일으키는 것이다. 뼈를 맞추고 근육을 입히고 살을 입히고 가죽을 덮어서 드디어 생기를 향하여 살게 하라고 그래서 일어서는데 극히 큰 군대가, 이스라엘이 살아나는 것, 그 언약, 새 언약이 에스겔 36장 24절로 28절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이 에스겔의 새 언약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뛴다. 죽어버린 이 해골들을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 에스겔 36장 24절로 28절에 이 약속을 주시고 드디어 그것을 실행에 하나님은 옮기시는 것이다.

여러분, 십자가의 피에 눈을 씻지 아니하면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죽어도 포기 못하시는 우리 아버지를 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으시기를 바란다. 눈이 밝아져서 우리 아버지를 뵐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은혜이겠는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더 이상의 기회와 특권이 소용이 없을 때까지, 자비와 호소의 경고의 음성이 마지막 소용이 없을 때까지 우리를 따라 오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가운데서 이제 하나님께서 버리실 수밖에 없으셔서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는 그 일곱 재앙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호소가 있음을 보게 된다.

요한계시록 16장 9절을 보면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이 말씀을 처음에 잘못 읽었다.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결코 아니다. 재앙을 내리시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가슴이 아모스에 기록이 되어있다.

왜 재앙을 내리시는가? 아모스 4장 6절 이하에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 각처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재앙을 내리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 가슴은, 그 타는 가슴으로 그 매를 때려서라도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우리 아버지의 간절한 타는 가슴의 표현이었다.

계속해서 7절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재앙의 목적은 우리를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에 타는 가슴의 표현이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6장 22절
  • 이사야 43장 1절
  • 빌립보서 3장 13절로 14절
  • 에스겔 37장
  • 에스겔 36장 24절로 28절
  • 요한계시록 16장 9절
  • 아모스 4장 6절로 7절

  1. 25. 죄의 결과

    Date2019.11.08 Byblogmaster Views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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