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거듭난 증거는 사랑이 본능적으로 되는 것이다

by blogmaster posted Sep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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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말하는 “사랑”이란

앞에서 배운 대로 거듭난 증거는 사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얻게 됩니다. 거듭남은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상태이고, 하나님의 성품이 녹아들어간 하늘의 율법이 온전히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도 사랑이고 ‘율법(norma dei)’도 사랑이며 하나님의 ‘품성(natura dei)’도 사랑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추상적인 개념이나 철학적 명제 정도로 판단합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이나 사랑의 성격을 판단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이 좀 있는 줄 오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상대를 사랑하려고 하는 그 모든 행위는 대부분 자기 의를 높이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이사야 43장 4절에는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사랑하다’의 히브리어는 ‘아헤브(אָהַב)’입니다. 이 단어의 원래 의미는 ‘바치다(devote)’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말’이 아니고 ‘행동’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상대에게 다 바치는, 던지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선언합니다. ‘바치는 것’이 바로 사랑이므로 그 다음에 ‘독생자를 주셨으니’라는 말이 없으면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 그에게 나의 모든 것을 바치지 않는다면, 그건 허울 좋은 ‘립 서비스(lip service)’에 불과할 뿐, ‘진심어린 사랑(hearty love)’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시며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독생자의 영원한 생명을 영원한 사망에 죗값으로 바치는 행동으로 그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로마서 8장 32절)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깨닫는 것, 이것은 거듭난 상태를 깨닫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장 8절) 반대로 죄인인 우리 인간은 사랑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은 사도 바울이 언급한 아가페 사랑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것, 즉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이 사랑이 없으면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3장 1〜3절)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여기서 ‘유익이 없다’는 헬라어로 ‘오펠레오(ὠφελέω)’의 부정인데, ‘효험이 없다’ ‘쓸데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말입니다. 구원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일서 4장 7〜8절)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단순한 정서나 감정이 아니며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사랑은 사망을 극복하고 생명을 줍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한일서 3장 14절)

그러나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첫 조상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인 본능적인 사랑을 죄를 선택함으로 잃어버리게 되고 죄의 원조인 마귀의 품성으로 종자 자체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지워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듬어 알게 하시기 위하여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의 관계로 남겨 놓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사랑에 대한 최후의 보루인 셈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이사야 49장 15절)

따라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생각하면 성경 상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누가복음 11장 13절)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런 부모의 사랑(parental love)이 하나님의 사랑에 모사(模寫)임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비록 죄된 본성을 가진 죄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모든 것을 조건 없이 주고 헌신하며 희생합니다. 어떤 부모라도 자식에게는  계산을 하거나 주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서 건네지 않습니다.

이것이 타락 전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창조해 주신 본성, 즉 ‘본능적(natural)’, ‘자동적(automatic)’, ‘무의식적(unconscious)’ 사랑을 드러내는 그림자입니다. 사랑의 이 세 가지 속성이 중요합니다.

 본능적 사랑: 자기 보존의 법칙을 무시하는 희생을 감행하게 합니다.

 자동적 사랑: 아무런 조건 없이(unconditional) 자발적으로 사랑하게 합니다.

 무의식적 사랑: 되돌려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사랑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