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성경 상 거듭난 사람들의 이야기

by blogmaster posted Sep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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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도를 그대로 닮다

 모세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사십일 동안 시내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 밑에서 애굽에서 우상숭배 하던 습관을 잊지 않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를 자행했습니다.

도저히 회개할 가능성이 없는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쓸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 32장 32절) 놀라운 기도입니다.

자신의 구원보다 남의 구원을 먼저 생각한 모세는 분명히 거듭난 사람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 기도는 모세가 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 속에 계셨던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입니다. 바로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예수님의 기도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하니이다.”(누가복음 23장 34절)

로마서 8장 9절에는 “누구든지 그리스의 영이 그 속에 계시면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나는 죽어도 좋으니 내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달라고 했던 모세의 기도 속에서 예수님의 영이 그의 마음에 임하셨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거듭남은 유전자가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사랑했던 사단의 종자는 없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유전자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남입니다. 이처럼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아들이 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구약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거듭난 사람의 표본이 바로 기도의 사람 다니엘입니다. 그의 인생 말년에, 정력적으로 국가의 일을 보면서도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에 모든 것을 바치며 기도했던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의 70년이 거의 끝나가는 즈음, 다니엘이 하루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했습니다. 예레미야 25장 15절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예루살렘이 황폐한 가운데 70년 동안 바벨론에 있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이 생각난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엎드려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운명을 물었습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다니엘서 9장 3절) 여기 중요한 단어가 나오는데, 바로 금식입니다. 다니엘은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금식하고 죽은 사람이 입는 베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를 시작합니다. 다니엘 9장 20절에 보면,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가 아는 대로, 다니엘은 우상숭배를 한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충성된 종으로 평생을 보냈는데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스스로 금식을 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쓴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니엘이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이 “저들이 범죄하였나이다.”라고 남의 죄를 고발하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고, “우리가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듯이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거듭난 사람의 특징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자신의 죄로 받아들이고 뒤집어쓰는 자들입니다. 이 기도 역시 다니엘이 자기 스스로 한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다니엘 속에서 대신 기도하신 것입니다.

바울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또 한 사람의 거듭난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스스로 빌립보서 3장 6절에서 예수님 만나기 전에 “내가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만만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나중에 예수님을 직접 만난 다음에는 로마서 7장 18절에서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마음속에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것을 자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거듭난 자들은 이후 비슷한 양태를 보입니다. 바울 역시 자기를 죽이려고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대담하게 나아갑니다. 그러면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 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로마서 9장 1〜3절)라고 말합니다. 철면피 같은 바리새인들, 자신을 죽이려했던 유대 지도자들을 위해 스스로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짐을 당할 수 있다고 고백한 바울이야말로 진정 거듭난 사람이었습니다.

이 기도 역시 바울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임재하신 예수님께서 대신 하신 기도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거듭나는 것은 분명히 자기를 사랑하는 정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속에 묻히고 죽어서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과 이웃만을 사랑하는 유전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세나 다니엘, 바울과 같은 하나님의 종들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악함과 죄(자기 사랑의 죄)를 깨닫고 통곡하고 회개하며 용서의 사랑에 자신을 맡겼을 때 드디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 가슴속에서도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죄(자기 사랑, 이기심, 욕심 등)를 넉넉히 녹여버리고 자신을 영원히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우리를 다시 재창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