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죄는 죄된 본성, 죄된 유전자이다

by blogmaster posted Sep 1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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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떠나서 행하는 모든 일은 사욕과 죄로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죄는 일련의 잘못된 행위들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죄는 마음과 생각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구원의 첫 번째 요소는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첫 단추가 잘 꿰어져야 두 번째 단추도 제대로 낄 수 있습니다. 죄를 인정하는 것은 단순히 내가 이러저러한 죄들을 범했음을 시인하는 것 이상입니다. 우리는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어떤 세력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력을 성경은 ‘죄의 세력’이라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었을 때, 여러분은 새로운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손으로 행하는 육체적인 할례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골로새서 2장 11절, 쉬운성경) 죄에 대하여 논할 때 많은 사람들은 이 ‘죄의 세력’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러저러한 밖으로 드러난 죄된 행위들을 정복하면 죄마저 정복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설사 그러한 죄된 행위들을 정복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쁜 ‘행위’를 중단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야비하며 자신의 선함을 뽐내는 자신의 ‘존재’는 중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죄인의 상태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심한 표현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죄인의 상태를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벗어날 수 없는 속박의 상태, 죄의 노예, 종, 그리고 타락 등의 용어로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이런 자신을 다음과 같이 한탄했습니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기 14장 4절) 그리스도를 떠나서 행하는 모든 일은 사욕과 죄로 더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의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누가복음 18장 11〜12절)고 기도해도 그의 상태는 어쩌면 세리보다 더 악한 지경에 놓여 있을지 모릅니다. 그 이유는 내가 선하다고 느낄 때 더 이상 그리스도의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이러한 우상숭배와 자기 찬양의 정신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런 죄악의 경향은 타고나는 것이지 학습된 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류는 사단의  포로로 전락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인류를 사단의 세력에서 구출해 내는 것이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로마서 8장 7절) 교육과 수양, 절제와 의지력, 연단과 인간의 노력으로는 육신의 생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이것들이 혹 행위의 단정함을 이룰 수는 있어도 마음을 고칠 수는 없으며 생애의 동기를 깨끗케 할 수도 없습니다. 오로지 거듭나는 것 외에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구주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요한복음 3장 3절)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린도전서 2장 14절)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의 품성의 인자하심과 아버지 같은 사랑의 온정을 깨달아 아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부르짖기를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로마서 7장 16절)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얻을 수 없는 순결과 의를 갈망하여 부르짖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절)라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부르짖음은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대에나 죄의 짐에 눌린 자들의 마음에서 발하는 부르짖음입니다. 이런 모든 부르짖음에 대한 대답은 다만 하나 밖에 없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한복음 1장 2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