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회개라는 값진 선물

by webmaster posted Aug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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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회개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라는 말씀이 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 우선 사도행전 11장 18절을 보겠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로마의 장교였던 백부장 고넬료가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듣고 회심을 경험합니다. 나중에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 앞에서 회개의 보고서를 내놓을 때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라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회개는 당사자가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디모데후서 2장 25절에도 유사한 말씀이 나옵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여기에서 사도 바울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회개함을 주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 30〜31절에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한글 번역에는 “얻게 하시려고”라고 되어 있는데, 헬라어 원문에는 반대로 ‘주시려고(δοῦναι)’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도 ‘투 기브 리펜턴스(to give repentance)’, 즉 ‘주시려고’로 옮겨졌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죄의 용서뿐만 아니라 회개 역시 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회개, 곧 잘못을 뉘우치고 울고 불며 하나님 앞에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비는 그런 회개는 사실은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와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는 우리가 완성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죄를 빠짐없이 다 깨닫고 그 죄를 다 용서받으려면 우리가 쉬지 않고 천년동안 회개한다 해도 다 이룰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죄악의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도 알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짓는 모든 죄의 실체를 뿌리까지 아시고 그 죄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가셔서 통곡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히브리서 5장 7절) 

고린도후서 5장 21절에 “우리의 죄가 되셨다”는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되셨고 그로 인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만 했습니다. 영원히 죽임을 당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이에게 구원해 주시기를 눈물로 통곡하며 간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짐을 지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회개라는 개념으로 이야기할지라도 회개는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죄도 모르고 회개도 모를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죄가 얼마나 크고 넓고 깊은지 이해할 수 없기에 회개도 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단지 수박 겉핥기식의 회개는 할 수 있습니다. 문자적인 율법에 매달려서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간음한 죄들을 회개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초등학생이 벌을 서면서 하는 반성 수준에 불과한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매가 무섭고 벌이 두려워서 혹은 회개 안 하면 지옥에 가게 될까 두려워서 하는 그런 회개입니다.

죄의 뿌리는 이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정신입니다. 회개마저 자기가 온전히 벌을 안 받고 무사히 지나가기 위해 합니다. 그것은 죄의 뿌리까지 드러내어 진정으로 용서 받기를 원하는 그런 회개가 아닐 뿐만 아니라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민에 불과합니다. 안타깝게도 회개나 신앙마저 자기를 사랑하는 근본적인 동기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실제로 용서를 받은 사람들의 삶을 보면 그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죄에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삶에서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끝까지 자기사랑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자기가 당할 형벌과 죽음을 앞에 두고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이를 갈고 운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2절에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인생 끝까지 자기를 사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반면 예레미야애가 5장 21절에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멸망당하는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통곡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여기에 쓰인 ‘돌이키다’라는 말이 ‘회개하다’는 뜻의 ‘슈브(שׁוּב)’라는 동사입니다.

예레미야가 통곡하면서 외치는 기도는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도와주시라는 요청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31장 18절에서도 예레미야는 통곡하며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끌어 돌이키실 때에만 우리가 돌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먼저 회개를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용서와 은혜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치 회개가 용서를 받기 위한 조건이거나 아니면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이들도 간혹 있습니다만 이것은 크나큰 오해입니다. 로마서 2장 4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느냐고 우리에게 되묻고 있습니다.

탕자가 술에 취해서 여자들의 품속에 있을 때에는 그의 생각 속에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배가 고파 죽게 되었을 때에야 그는 자기를 이미 용서하고 기다리고 계시는 사랑의 아버지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결국 그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몽둥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아들은 결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를 용서하고 기다리시는, 사랑에 멍이 든 아버지의 가슴이 그에게 희미하게나마 떠올랐기 때문에 아버지께 돌아갈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를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사도행전 11장 18절
  • 디모데후서 2장 25절
  • 사도행전 5장 30〜31절
  • 히브리서 5장 7절
  • 고린도후서 5장 21절
  • 누가복음 23장 34절
  • 마태복음 13장 42절
  • 예레미야애가 5장 21절
  • 예레미야 31장 18절
  • 로마서 2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