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정결케 하는 물

by webmaster posted Mar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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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피로 죄를 완전히 씻어낼 때

지난 글에 이어서 에스겔 36장의 하나님의 언약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약속은 에스겔 36장 25절에 나타납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향땅에 데리고 가신 다음 그들을 물로 정결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물’이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물이라는 단어는 장례식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네를 떠나 전쟁이나 장례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는 물로 손을 씻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시체로 몸이 부정해졌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9장에 보면 이와 관련된 의식이 등장합니다.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은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민수기 19장 16절)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동네 안으로 들어갈 때 그곳은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기에 부정한 죄인이 부정한 상태로 들어가면 안 되었습니다. 거룩한 장소에 들어갈 때 물로 반드시 정결케 했는데 물론 이 물은 그냥 맹물이 아니었습니다. 붉은 암송아지를 잡아서 그것을 재로 만들어 물에 타서 잿물을 이용했습니다. “이에 정결한 자가 암송아지의 재를 거두어 진영 밖 정한 곳에 둘지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 회중을 위하여 간직하였다가 부정을 씻는 물을 위해 간직할지니 그것은 속죄제니라.”(9절)

왜 붉은 암송아지여야 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피는 피로 씻어야했습니다. 기름은 물로 닦을 수 없습니다. 기름은 기름으로 닦아야 합니다. 비누 역시 기름덩어리입니다. 죄는 생명을 희생시켜야 합니다. 생명을 희생시킨 대가는 분명히 생명으로 지불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이사야 1장 18절) 죄의 흉악성은 반드시 피를 흘려서 없앨 수밖에 없습니다. 붉은 색은 죄를 상징하고 송아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체로 드리는 속죄제를 상징했습니다. 개인이 죄를 지었을 때는 양이나 염소를 잡지만 백성 전체가 죄를 지었을 때는 반드시 속죄제로 소를 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시는 예수님에 대한 정확한 상징입니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남긴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재’입니다. ‘재’ 그것은 죄가 태워져서 남은 영수증입니다. 재는 죄가 도말되었음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이 재를 물에 타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에 탄 잿물을 더러운 사람에게 뿌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브리서 10장 22절) 여기에 나오는 “맑은 물”이 바로 잿물입니다. 에스겔 36장 25절의 “맑은 물” 역시 잿물입니다. 맑다는 것은 죄가 섞이지 않았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잿물로 몸을 씻으면 그 물이 바로 부정의 물, 더러운 물로 변합니다. 세수를 하면 대야의 맑은 물이 더러운 물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맑은 물로 뿌리고 씻었다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닦아내고 그 피는 부정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을 주시고 “네가 스스로 씻으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씻어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민수기 19장에 보면 물을 뿌리는 자는 제사장입니다.

죄인이 자기가 스스로 물을 뿌리지 못합니다. 제사장이 물을 뿌리게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물에 재가 들어갑니다. 성소 제단 위에 불이 내려서 양을 완전히 태워 재를 만드는데 그것은 어린양 되신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불에 타 없어지는 둘째 사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단순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와 함께 영원히 없어지는 둘째 사망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없애셨다는 증거물이 바로 재입니다. 그래서 그 잿물이 우리 마음에 뿌려지고 우리의 양심에 악이 깨끗하게 사라진다는 사실을 증거합니다. 이렇게 죄로부터 정결케 되지 않으면 성령이 부어지실 수가 없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사도행전 2장 38절) 여기 성령이 오시는 공식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무조건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은 오시고 싶어도 오실 수가 없습니다. 오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죄가 가득한데 도대체 어디에 성령이 머무실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피로 죄를 완전히 씻어낼 때에만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더러운 영이 아닙니다. 더러운 시궁창 속에 미꾸라지는 살 수 있지만 빙어는 깨끗한 1급수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악령은 더러운 시궁창 같은 우리의 욕심과 교만 속에 살지만 하나님의 성령은 결코 그 자리에 머무실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죄의 정결함을 입고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을 때에만 성령이 우리의 마음속에 오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물로 정결케 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이 땅에서 물로 정결케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씻으실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성령으로 나셨습니다.

성경구절

  • 에스겔 36장 25절
  • 민수기 19장 16절
  • 민수기 19장 9절
  • 이사야 1장 18절
  • 히브리서 10장 22절
  • 에스겔 36장 25절
  • 사도행전 2장 38절
  • 마태복음 1장 1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