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개들의 믿음

by webmaster posted May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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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곳하지 않고 주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믿음

이번 글에서는 사복음서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성경절을 공부해볼까 합니다. 마태복음 15장 22절에는 ‘가나안 여자’라고만 되어 있습니다만 마가복음 7장 26절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구체적인 명칭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두로와 시돈 지방에 들어가시다가 운명적으로 한 여자를 만나게 됩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마태복음 15장 22절) 얼마나 시끄럽게 소리를 질렀던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여자를 쫒아내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참 이상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24절) 단칼에 거절하는 예수님께 여인은 더 달라붙어 도움을 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더 야멸차게 그녀를 내치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26절) 순식간에 수로보니게 여인은 ‘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많은 불쌍한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셨지만 예수님께서 유독 이 여자에게만 이렇게나 쌀쌀맞게 대하셨던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많은 신학자들이 이 난해성경절을 제대로 이해해 보려고 수 세기 동안 갖가지 해석과 설명을 내놓으며 노력했지만 아직까지도 여러 의견들이 분분할 뿐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치욕스러운 욕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7절) 예수님께서는 여인이 보여준 믿음에 놀라며 드디어 구원의 보증을 주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28절) ‘개들의 믿음’, ‘개 같은 믿음’이라고 말하면 어감이 좀 이상하지만 ‘개들과 같다.’는 말을 듣고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믿음이 구원을 받는 데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이 여인이 보여준 믿음은 딸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위치와 신분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예수님의 은혜를 구하는 이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에 예수님도 칭찬할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모르고 있지만 성경은 분명히 우리들의 영적 상태를 썩고 문드러졌다고 표현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예레미야 17장 9절) 성경은 인간의 마음이 시장통의 악취가 풍기는 생선 쓰레기 같다는 사실을 정작 우리들이 알지 못한다고 고발합니다. 이를 아시는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개 같다’고 표현했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너희들이 개 같은 존재로 멸시하는 이방인들도 이렇게 구원을 갈망하는 것을 보라. 사실 너희들이나 이들이나 개와 같은 것은 별 차이가 없다.’ 영적 우월감에 거드름을 피우면서 이방인들을 개, 돼지로 비난했던 유대인들도 똑같이 부패한 마음을 가진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콕 집어내신 것입니다.

어쩌면 이방인들이 유대인들보다 더 의로울지도 모릅니다. 이방인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지만 유대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칭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의 죄는 율법을 말하고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율법을 범하는 위선자들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불법이라고 인정하는 이방인들보다 유대인들이 더 중한 죄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방인이 죄를 먼저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비유에 대비해 보면 이 불법을 행하는 이방인들을 탕자로, 유대인들은 아버지의 곁을 지켰던 큰아들로 볼 수 있습니다. 겉으로만 볼 때는 큰아들은 효자에 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동생이 살아 돌아왔을 때 그는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며 이기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아버지의 곁을 지켰음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정말로 목숨까지 내놓고 예수님께 매달렸던 믿음은 인자가 되어 이 땅에 오셨던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가졌던 믿음과 동일한 성질의 믿음이었습니다. 이방인이라고 무시를 당하는 존재였지만 예수님의 자비를 구하고 모든 것을 맡겼던 여인은 우리가 본받아야할 근본적인 믿음의 중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태복음 15장 28절)는 축복을 받는 믿음을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15장 22절
  • 마가복음 7장 26절
  • 마태복음 15장 22절, 24절
  • 마태복음 15장 26절~28절
  • 예레미야 17장 9절
  • 누가복음 15장
  • 마태복음 15장 2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