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성령을 거역한 죄

by webmaster posted Aug 14,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강의 오디오 듣기(MP3 다운로드)
강의 오디오 듣기(팟캐스트)

 

‘용서를 거절한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는 성령을 거역하는 죄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명백하게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말로 거역하면 용서를 받지만 거룩의 영을 거역하면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대체 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성경절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논란거리가 되어왔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고 설명하려고 매달려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6장 14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그(성령)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 영광을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전달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면장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사면장을 실제로 전달하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용서를 ‘했느냐 안 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용서하신 은혜의 보증서를 전달하도록 ‘허용하느냐 안 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욕하고 저주할 수는 있습니다만, 용서를 수용하지 않으면 아무리 예수님께서 용서하시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용서를 마지막으로 전달하시는 성령님을 거역하면 예수님께서 용서해 놓으신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일부 교단에서 말하는 것처럼, 일부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 모든 사람의 운명은 절대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이 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흔히 ‘자유의지(free will)’라고 부르며 믿음은 이런 자유의지에 기반해서 발휘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에 나 자신을 맡기든지 아니면 스스로 내 죄를 결산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권한은 세상 그 누구도,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빼앗으실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신학적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도무지 합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성령을 거역한다’는 말은 ‘용서를 거절한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용서 자체를 거절하는 것이므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없애는 일입니다. 따라서 성령을 거역한 죄에 대해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이 “내가 젊어 예수님을 믿었는데 세상이 좋아 성령을 거역하고 타락했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희망이 없겠죠?”라고 묻습니다. 그러면서 근거로 드는 성경절이 이것입니다.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브리서 6장 4〜6절)

이런 질문은 성경을 잘못 이해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을 거역한 죄는 이런 방식이 결코 아닙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은 마지막 상태, 성령을 거역한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앞뒤를 면밀히 읽어보시면 이 말씀이 마지막 때의 문맥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끊임없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가슴으로 돌아오도록 호소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도행전 5장 30〜32절에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죄의 값은 다 치러지고 용서는 완성시켜 놓았는데 마지막까지 용서를 거절하면 방법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41절에 “저주를 받은 자들아.”라는 말씀을 보면 ‘저주를 받는다’는 수동태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아라르(אָרַר)’라고 하는데, ‘스스로를 묶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사단에게, 죄에 스스로를 묶는다는 무시무시한 뜻입니다.저주를 받은 자들은 이렇게 자신을 술이나 마약, 돈과 명예, 정욕과 같은 죄악에 묶어버린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저는 세상이 더 좋습니다. 저에게 뭐라 하지 마세요.’, ‘나한테 오지 마세요. 난 앞으로 쾌락을 따라 살 겁니다.’ 이런 말들은 성령을 거역한 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성령을 계속 거절하는 것이 확정이 된 상태를 성경은 ‘성령을 거역한 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끊임없이 거역한 죄를 성경은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은”(디모데전서 4장 2절)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화인은 불로 달구어진 벌건 쇠도장으로 소나 가축의 엉덩이에 찍는 표식으로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새 살이 돋아나지 않고 그대로 굳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양심은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거역한 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 끊임없이 역사하시고 간절하게 호소하고 계십니다. 인간에게 임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형편은 그 성령이 우리에게서 완전히 떠나버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바로 성령의 음성을 들읍시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장 2절)

여러분 모두 오늘, 바로 지금 은혜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12장 32절
  • 요한복음 16장 14절
  • 히브리서 6장 4〜6절
  • 사도행전 5장 30〜32절
  • 마태복음 25장 41절
  • 디모데전서 4장 2절
  • 고린도후서 6장 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