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번제의 과정

by webmaster posted Nov 05,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강의 오디오 듣기(MP3 다운로드)
강의 오디오 듣기(팟캐스트)

십자가의 표상이 잘 드러나는 부분

이번 글에서는 지난 글에 이어서 번제의 과정을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살펴볼까 합니다. 레위기 1장 5절에는 번제의 과정 중에서 십자가의 표상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 등장합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 앞 제단 사방에 뿌릴 것이며.” 수송아지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번제단의 사면에 뿌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번제단은 지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세워지고 회복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모형이 됩니다. 번제단 사면에 피를 뿌리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동서남북(東西南北)으로 전 세계적으로 세워질 것을 암시합니다. 속죄제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권세가 다시 회복될 것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번제를 위해 제사장은 제물의 가죽을 벗겨야 했습니다.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6절) 가죽은 짐승의 옷과 같습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비추셨던 빛이 아담의 전신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로 타락한 이후 그 옷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순식간에 벌거벗겨진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이 벌거벗음은 죄의 형벌로 이르러온 결과로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께서 이를 그대로 받으셔야 했습니다(고린도전서 15장 45절). ‘각을 뜨는’ 모습과 십자가에서 벌거벗은 채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이 겹쳐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 로마의 형법은 사형수들에게 속옷을 입혀서 부끄러운 곳을 가려주는 관용을 베풀어주지 않았습니다. 마치 속옷조차 아깝다고 여기듯 형틀에 달기 전 사형수의 옷을 죄다 벗겨버렸습니다. 그 모습은 바로 아담이 죄를 짓고 영광의 옷을 잃어버렸을 때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 모습으로 우주의 통치자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동물의 각을 뜨는 이유는 근육 자체가 아래로 향해 있어서 양쪽 다리가 잘 벌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따르면 잡은 제물을 나무 위에 골고루 놓으려고 열 토막으로 쪼갰다고 합니다. 양 앞다리를 자르고, 그 다음 뒷다리를 자르고, 가슴을 자르고, 목을 자르고, 꼬리를 잘라서 각 조각들을 불 위에 늘어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1장 7〜8절에는 각을 뜨고 불 위에 ‘벌여놓아야 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단 위에 불을 붙이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의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이 모습은 십자가 위에 매달리신 예수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9절) 내장과 정강이를 씻어야 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정강이’는 뒷다리를 의미합니다. 실제로 양의 가죽을 벗겨보면 속은 매우 깨끗하기 때문에 따로 씻을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를 정결의식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이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는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로마 군인 하나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우리말로 된 성경에는 ‘피와 물’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이미 유명을 달리한 사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혈청(血淸)이 쏟아진 것입니다. 피와 분리된 물이 쏟아진 것이고 이는 예수님의 두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내장에 고여 있었던 피가 피떡(혈병)과 혈청으로 바뀌어 바깥으로 흘러내리며 내장과 정강이를 씻으라는 번제의 표상이 충족되었습니다.

마지막의 ‘향기로운 냄새’라는 말은 우리나라말에만 있는 번역입니다. 실제 원문에는 ‘니호아흐(נִיחוֹחַ)’라는 단어를 썼는데 직역하면 ‘달래다(soothe)’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삭이고 달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단어는 특히 구약 창세기에서 신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자식들을 괴롭히고 죽인 죄를 진노하시고 불에 태워서 영원히 없애셔야 했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아들이 이 모든 것들을 다 안고 돌아가셨을 때 비로소 마음에 위로를 받으신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번제로 드리고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레위기 1장 5절~6절
  • 고린도전서 15장 45절
  • 레위기 1장 7〜9절
  • 요한복음 19장 3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