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로마서 7장의 사람 ①

by blogmaster posted Oct 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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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 매었다’

이번 시간부터는 로마서 7장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이 말씀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로마서 7장만큼 로마서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던 장은 또 없을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왜 바울이 로마서 7장을 기록했을까? 흥미로운 사실은 로마서 7장에 들어서면서 바울은 일인칭 대명사인 ‘나’를 사용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바울이 ‘나’라는 말을 고집하는 이유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난 이후 바울 자신이 겪었던 영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성장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들고 있는 여러 사례들 역시 자신이 겪거나 들었던 이야기에서 응용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바울은 로마서 7장 1〜6절에서 결혼에 관한 법을 한 예로 들고 있습니다. 어떤 여인이 한 남편과 더불어 살았는데 그 남편이 살아있는 동안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그것은 곧 음행이라고 규정하고, 남편이 죽으면 여자가 비로소 자유인이 된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건 바울이 들었던 생생한 비유입니다.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바울이 여기서 비유로 들고 있는 전 남편은 ‘율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율법이라는 남편은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잘못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엄격하고 무서운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2절) 남편이 죽어야 다른 남자에 가서 행복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겠지만, 전 남편이 죽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3절) 썩 합당한 비유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편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바울은 도리어 우리가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4절) 비유를 통해, 우리가 직접 죽은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바울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로마서 7장에 나타난 ‘율법에 매었다’는 표현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율법에 매었다는 말은 분명히 율법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율법이 요구하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6절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여기서 ‘의문(儀文)’ ‘율법 조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그람마’를 뜻합니다. ‘글자’라는 뜻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문자대로 지켰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바로 이어서 그 율법이 잘못된 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7절)

과연 율법이 죄냐? 그렇지 않다고 여기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율법이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한 사랑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율법이 악해서가 아니고 우리 속에 있는 죄의 본성이 악해서 죄를 저지를 뿐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7장 10〜12절에 보면, 에덴동산의 모습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에덴동산에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계명은 무엇이었을까? 그 계명을 범했을 때, 생명나무의 길로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눈물을 머금고 막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 그 지식의 나무는 하나님의 율법을 상징합니다. 법이 아니면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악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한 상태에서 생명과를 먹으면 그것은 영원한 저주가 될 것이기 때문에 생명과를 먹지 못하도록 막으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결국 율법이 아니라 사단이 우리를 죽인 것입니다. 율법은 가운데 서서 네가 이 법을 범하면 죽게 될 것이라고 제시할 뿐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도 나를 속이고 나를 죽인 장본인은 바로 사단이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성경구절

  • 로마서 7장 1〜6절
  • 로마서 7장 10〜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