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땅을 얻는 자

by webmaster posted Dec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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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한 자’

이번 글에서는 ‘온유함’에 대해서 살펴볼까 합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에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 ‘온유한 자’에서 ‘온유’라는 말을 영어로는 ‘믹(meek)’이라고 번역하는데, ‘믹’은 ‘온화한’, ‘부드러운’의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헬라어로는 ‘프라우스(πραΰς)’라고 하는데 ‘친절한’, ‘자상한’, ‘젠틀한’ 정도의 의미를 지닌 형용사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액자로 걸려있는 말씀 중에 단연 으뜸으로 많이 볼 수 있는 성경절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이런 말씀이 29절에 이어집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의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 스스로 마음이 온유하다고 밝히고 계십니다. 여기에 나오는 ‘온유’가 앞에서 말한 ‘프라우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멍에는 십자가의 멍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멍에가 왜 쉽고 가벼운 것일까요? 주님께서 이미 그것을 다 지셨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의 죄악의 멍에를 지셨습니까? 그것은 오로지 자신을 철저하게 비우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에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스스로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셨지만 오히려 자신을 몽땅 비워서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이것이 온유함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낮추어 사람들의 종이 되신 것입니다. 어느 수준까지 낮아지셨을까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장 8절) 빌립보서의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는 그의 희생과 죽으심 속에서 드러났습니다. 자기를 비우시고 하늘의 모든 권세를 다 버리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과 같이 되시고 치욕스러운 죄인의 모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온유와 겸손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온유함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정신, 도리어 자신을 희생하여 스스로 사랑의 제물이 되신 ‘자기 낮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지신 멍에, 즉 그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짐이나 부담이 아니라 용서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분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에게 생명을 의미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를 상징했습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데에 있고 참된 겸손과 온유는 자기를 완전히 내려놓는 데에 있습니다. 자기를 높이고 자신만을 사랑하는 죄의 정신을 가진 사람은 평화를 깨뜨리는 장본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멍에는 모욕과 수치, 멸시와 천대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자기를 내려놓고 욕심을 비운다면 지금 이 순간 승리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자기 비움이 하나님의 나라를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격조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수천, 수만 평의 땅을 가지고 대궐 같은 저택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할지라도 내가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누가 땅을 기업으로 얻을까요?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은 땅을 가질 수 없습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우화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기름진 땅을 얻고 싶었던 농부 파흠은 광활하게 펼쳐진 대초원을 보고 욕심에 눈이 멀게 됩니다. 하루를 걸어서 발로 직접 밟고 돌아온 땅이 전부 자신의 차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파흠은 한 평이라도 더 얻기 위한 몸부림으로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결국 해가 서산 너머로 뉘엿뉘엿 지자 혼신의 힘을 다해 전력질주를 해서 자신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온 그는 턱 하고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대농장의 주인이 되고 싶었던 파흠은 그렇게 고작 자신의 몸을 뉘일 한 평의 땅만 얻고 말았습니다. 그의 시체를 메고 가는 상여꾼의 한 마디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주 좋은 땅을 얻으셨군요.”

온유함으로 하늘의 땅을 기업으로 얻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4절
  • 창세기 28장 11〜12절
  • 창세기 28장 13〜14절
  • 창세기 32장 24〜26절
  • 창세기 32장 28절
  • 이사야 40장 27절
  • 이사야 41장 8절
  • 이사야 41장 14절
  • 이사야 45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