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불쌍히 여기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

by webmaster posted Jan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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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이 없는 사랑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조금 이상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25장 35〜40절을 읽어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구원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은 구원받을만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의아해하면서 반문하고 있습니다.

선행은 자신도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동정이 없는 사랑이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집에는 동정이라는 문패가 항상 붙어있습니다. 일상의 평범한 행동 속에서 일어나고 쌓여지는 동정이 결국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욥은 말했습니다. “이는 내가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음이라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기뻐 노래하였었노라 내가 의로 옷을 삼아 입었으며 나의 공의는 도포와 면류관 같았었느니라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비도 되며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하여 주었으며.”(욥기 29장 12〜16절) 욥이 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소경의 눈이 되어 주셨고 절뚝발이의 발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배고픈 자의 손에 빵 한 덩어리를 놓아주는 손이 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욥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러한 본능적인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이기심을 주님 앞에 다 내려놓을 때 주님이 주시는 동정의 마음이 우리 안에 채워지게 됩니다.

바로 그런 것이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의 동정이 담긴 말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사야 42장 2〜3절의 말씀에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이사야는 노래하기를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 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 하시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떠한 삶을 사셨는지를 보여주는 성경절입니다.

말할 수 없는 동정과 사랑 때문에 병자를 보고는 그냥 지나치실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몸이 다 무너질 정도로 힘든 날에도 새벽녘까지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그들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친히 짊어지셨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8장 17절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질고를 모두 지셨습니다. 그가 치료해 주셨던 수많은 질병들을 친히 양 어깨에 짊어지시고 십자가로 가지고 가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고통과 눈물을 영원히 없애셨습니다. 사랑이 그분을 죽게 한 것입니다.

동정의 말 한마디, 친절한 행동 하나하나는 피곤한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이들에게 커다란 위로를 줍니다. 사심 없는 따스한 말과 동정과 보살핌이 스며든 행동은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우리가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일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사랑과 친절을 베풀지 않고 표현하지 않은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하늘이 볼 때에 살인행위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누지 않은 사랑과 우리가 전해 주지 않은 복음이 오늘도 수많은 영혼들을 죽게 만드는 첫 번째 원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끊임없는 사랑의 샘이시며 동정의 우물이십니다. 그 샘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새로운 생명들을 살려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궁핍과 고통을 돌아보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십자가와 죽음을 뒤로 하시고 오직 우리들만 바라보셨습니다. 십자가의 대못도, 채찍도, 가시관도 예수님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향한 사랑과 동정이 그분을 기꺼이 십자가로 가게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죄의 희생물로 전락한 가련한 영혼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그들을 도와줄 가치가 있을까?’라고 되묻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만을 묻습니다. 가장 속절없고 비천한 사람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찾아내는 눈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는 말씀에서 동정과 자비의 안목을 되찾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25장 35〜40절
  • 욥기 29장 12〜16절
  • 이사야 42장 2〜3절
  • 마태복음 8장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