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평화의 왕 예수님

by webmaster posted Jan 1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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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죄의 빚을 다 갚으심으로 오는 평화

마태복음 5장 9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이사야 9장 6절에는 예수님을 ‘평강의 왕’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여기서 ‘평강’은 우리가 다 잘 알고 있는 단어 ‘샬롬(שָׁלוֹם)’이고 ‘왕’은 ‘군대장관’ 또는 ‘대장’을 뜻하는 ‘사르(שַׂר)’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샬롬’이라는 단어는 ‘없어진 부분을 다시 완전하게 채운다(complete)’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맥상 이 샬롬은 분명 어떤 죄와의 투쟁에 있어서 주님께서 우리의 죄의 빚을 다 갚으심으로 오는 평화를 뜻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시고 평화를 가져오신 개선장군이시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9절을 보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하셨던 인사가 바로 ‘샬롬’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못 자국 난 손과 찢어진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인간의 모든 죄를 다 갚으셨다는 영수증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평화가 이르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싸움이 없고 서로 편안한 상태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을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화목하게 하는 ‘평화의 직분’도 함께 주셨습니다. 이 평화의 직분은 다른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나누어주는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9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평화를 우리가 받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 그 평화를 나누어주는 직분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우리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평화와 차원이 다른 평화입니다. 

에베소서 2장 11절 이하를 보면 당시의 초대교회에 이방 그리스도인과 유대 그리스도인 사이에 큰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 논쟁거리는 바로 할례였는데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공동체 내에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미 구약성경에서조차 마음에 할례를 할 것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신명기 30장 6절; 예레미야 4장 4절) 사도 바울은 할례의 의무가 십자가로 해결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마음으로 죄를 맡기지 않으면 아무리 육체로 할례를 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로마서 2장 28〜29절)

마음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 상태로 육신의 할례만 받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점을 사도 바울은 여러 군데에서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선언으로 이 논쟁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에베소서 2장 14〜18절)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성소 마당에 있던 번제단 위에 놓인 양을 이방인들도 볼 수 있게 해 주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번제단의 양을 들어 올렸을 때 성소 밖에 있던 이방인들도 그 양을 볼 수 있었고 그 결과로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요 12:32)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화평이 되셨습니다.

자신의 자발적 죽음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던 구분과 경계의 담을 허무시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셨습니다. 이 평화가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평화입니다. 그 어떤 갈등 속에서도 주님은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우리에게 평화를 위대한 유산으로 남겨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뒤를 따라가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진정으로 희생하여 이 세상에서 예수님처럼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5장 9절
  • 이사야 9장 6절
  • 요한복음 20장 19절
  • 고린도후서 5장 19절
  • 에베소서 2장 11절
  • 신명기 30장 6절
  • 예레미야 4장 4절
  • 로마서 2장 28〜29절
  • 에베소서 2장 14〜18절
  • 요한복음 12장 3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