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by webmaster posted Mar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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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게 상대방을 용서하라

마태복음 6장 12절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주기도문 중에 어떻게 보면 잘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바로 이 기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 죄도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마치 용서에 어떤 조건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말씀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주기도문을 읊조리다가도 이 부분만 나오면 자신 없이 대충 우물거리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과거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하다가도 양심이 괴롭고 부담스러워 멈칫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가 무슨 의미일까요? 과연 우리가 다른 형제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일까요? 마태복음 18장 21절에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라고 묻는 대목이 나옵니다. 지금 예수님이 하신 기도 내용 그대로입니다. “일곱 번까지 용서 하오리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22절) 일흔 번씩 일곱 번이면 490번입니다. 이 490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또 무엇일까요? 7은 완전한 숫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번을 일흔 번 곱한 것은 그만큼 완전하게 상대방을 용서하라는 뜻입니다.

그래도 그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한 가지 의미심장한 비유를 소개하십니다.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에게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 오매.”(마태복음 18장 23절) 일만 달란트라는 액수는 현재 가치로 몇 백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입니다. 웬만한 사람은 평생 갚아도 못 갚을 돈인데, “일만 달란트 빚진자 하나를 데려 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데” 딱히 갚을 것이 없는 그를 보고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27절) 그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 대단한 용서를 그에게 베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은혜를 입은 “그 종이 나가서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관이 엎드려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28절) 그가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이 비유의 결과는 모두가 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 사람 역시 다음과 같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이 비유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용서의 횟수가 아니라 용서의 양입니다. ‘몇 번 용서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용서해줄 것인가?’가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히 “너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라, 그렇게 하면 내가 너를 용서해 주겠다.”

라고 하신 말씀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용서해주기에 앞서 이미 커다란 용서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 이를 잊지 않을 때 상대에게 다시 은혜를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을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이기적이기 때문에 용서 자체가 잘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주님의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상처는 대개는 가슴이 좀 아프고 말지만, 우리가 행한 죄악으로 인해 상처받으신 우리 아버지는 심장까지 갈가리 찢어지셨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아무리 깊은 상처를 준 사람일지라도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라.”(이사야 44장 22절) 용서를 받은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용서를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분의 사랑과 용서의 정신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내 마음과 정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으로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모두 주기도문을 통해 주님께서 내 안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형제자매들을 용서하시도록 허락하는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구절

  • 마태복음 6장 12절
  • 마태복음 18장 21절
  • 마태복음 18장 22절
  • 마태복음 18장 23절
  • 마태복음 18장 27절
  • 마태복음 18장 28절
  • 이사야 44장 2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