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자체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사실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하나님의 의의 열매, 즉 디카이오마가 심판의 기준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을 읽겠습니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여기 이상한 말이 등장합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이번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하나님의 의의 열매, 즉 디카이오마가 심판의 기준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을 읽겠습니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여기 이상한 말이 등장합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요한계시록 14장 6〜8절 말씀에 보면,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천사들의 소식이 있다. 6절에 보면,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복음’이라는 말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복음, 이 복음의 내용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7절)는 것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이번 시간에는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는 놀라운 말을 다시 한 번 확실히 이해하고자 합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의를 만드는 주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는 의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의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 밖에서, 또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의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에스겔 36장 28절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결론에 해당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의 노예에서부터 해방시켜 자신의 백성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은 영이 바뀐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중요한 패턴, 구원의 완벽한 공식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저번 시간 내용을 다시 복습해 봅시다. 에스겔 36장 27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신 분명한 이유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왜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실까?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새 영을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이번 시간에도 저번 시간에 이어 구원에 이르는 의에 대해서 더 심화된 이해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린도전서 1장 30절로 돌아가겠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그리스도 우리의 의!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바로 복음이고 구원이며 의입니다. 그 분은 친히 율법이 본래 말했던 그 본능적 사랑을 완성하셨으며, 그 분의 삶과 죽으심이 곧 율법 자체가 되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오늘은 부활의 의에 대해서 공부할까 합니다. 로마서 4장 22〜25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예레미야 23장 5〜6절을 읽을 때마다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예레미야는 절망의 선지자, 눈물의 선지자로 불립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기 아주 중요한 말씀을 주님께서 주셨는데, ‘하나님의 의’는 인간이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의, 즉 하나님의 의는 전혀 다른 성질의 물건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는 자신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의를 말합니다. 이 의는 지구상에 그 누구도 이룰 수 없었던 의였습니다. 이런 의가 가능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능적 사랑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일찍이 예수님께서 설파하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밝히신 팔복(八福) 가운데서 말씀하시기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의란 무엇일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5장 20절)는 말씀에서 의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이제 하늘의 심판에 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이르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요한계시록 16장 5〜7절)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다’는 선언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강사 : 홍요한 선교사
저번 시간에 이어 이번 시간에도 역시 언약과 의의 관계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호세아 6장 7절) 호세아 선지자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버린 일을 언급하며 ‘반역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기준을 아담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담이 누굽니까? 인류의 조상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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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의롭다’고 하는 말, ‘차다크(צךקה)’라는 동사가 성경에 사용된 첫 번째 용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창세기 38장 26절의 말씀 가운데서,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가 자기 며느리 다말에게 했던 말 가운데 처음으로 사용됩니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유다가 자기 며느리 다말에게 “그는 나보다 옳도다.”는 말을 했는데, 여기 쓰인 단어가 바로 차다크입니다. 왜 유다가 이런 말을 했을까?
강사 : 홍요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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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마지막 단어, 즉 ‘의’라는 단어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의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동사 ‘차다크(צךקה)’에서 나왔습니다. 차다크는 ‘반듯하다’ ‘구부러지지 않다’ 등등 여러 어원들로부터 나왔는데, 이 단어가 사용된 용례를 성경에서 찾아보면 이 단어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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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말씀이 로마서에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오늘은 그 부분을 함께 공부할까 합니다. 로마서 3장 22절은 헬라어 원문을 자세히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여기에 우리말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되어 있는데, 원문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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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대헌장(manifesto)’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말씀이 하박국 2장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당시는 고대 근동지역에 바벨론(신-바빌로니아)이라고 하는 거대한 제국이 주변의 나라들을 집어삼키면서 몸집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도 침공해서 많은 의인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모습을 하박국 선지자가 보면서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하박국 1장 13절)라고 묻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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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 완전히 맡기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용서해 놓으신 가슴, 그 홍해의 가슴으로 들어가서 완전히 내 죄 된 자아를 맡기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많은 성경절 중에서 요한복음 3장 16절은 복음의 대헌장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성경 전체를 잘 압축해 놓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맡기는지를 자꾸 묻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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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4장 12절에는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예수 믿음’은 문맥상 성도가 가진 믿음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면 ‘예수 믿음’이 꼭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의미하는 게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하셨던 그 믿음이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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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곱 마디의 유언을 보통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그 가상칠언의 마지막 말씀이 바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 23장 46절)입니다. 이 문장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주제를 다룰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한 마디로 믿음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것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강사 : 홍요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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